조각가 박충흠씨의 작품에선 빛이나 조명이 필수요소다. 이 작품 한가운데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빛은 밀폐된 사방 흰 벽에 오묘한 그림자 무늬를 드리워 한 밤 중 지구에 안착한 비행접시를 보여주는 듯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제’(2000년). 사진제공 황윤수씨
산비둘기와 소쩍새가 날아들고 할미꽃이 지천으로 핀다는 5월의 환기미술관(서울 종로구 부암동) 정원은 아름답고 싱그럽다. ‘조각가 박충흠 전’(6월27일까지)에 나온 작품들은 그 정원 입구에서부터 만날 수 있다. ‘빛을 담는 그릇’이라는 이름의 작품은 구리 조각들을 용접해 만든 작가의 대표작. 구리판을 4∼10cm의 작은 사다리꼴 조각들로 자른 뒤 용접으로 이어 붙여 커다란 그릇 모양으로 만들고 이것을 다시 어른 키 만한 철 기둥에 꽂아 세웠다.
○ 구리조각 틈새로 빛 투과시켜 몽환적 세계 연출
그의 작품의 특징은 조각들을 이어 붙일 때 그물처럼 작은 틈들을 낸 것. 작품 아래 서니 한낮의 햇빛이 잘게 부서져 쏟아졌다. 따갑고 지루하던 햇살이 부드럽고 오색찬란한 빛으로 변했다. 차가운 금속이 공간과 빛을 새롭게 창조한 것이다. 새삼 조각이라는 장르가 주는 ‘힘’에 놀랐다.
박충흠(58)의 작품에선 ‘빛’이나 조명이 외부적 혹은 2차적 요소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내부적, 1차적 요소다. 이 같은 사실은 전시장 안쪽 밀폐된 방에 전시된 비행접시 모형의 작품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작품 한가운데 놓여진 조명등(燈)의 빛이 용접 이음새 틈 사이로 새어나오면서 사방 흰 벽에 수놓는 오묘한 그림자 무늬들은 방 안을 몽환의 세계로 만들고 있다.
박충흠 - 허문명기자
흔히 조각작품은 공간을 단절하고 가르기 십상이다. 그러나 작가는 땅과 하늘, 안과 밖을 이어주는 대상으로 탈바꿈시켰다. 바로, 여기에 ‘박충흠 조각 읽기’의 키워드가 있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시절 이미 국전 입상으로 유명세를 탔고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 유학 후에는 동년배들보다 이른 나이에 대학 교수(이화여대) 자리를 잡아 부러움을 샀던 중견 조각가. 그러던 그가 1989년 갤러리 현대에서의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접었고, 급기야 2000년에는 교수직까지 그만둔 뒤 과천 작업실에 칩거하면서 은둔자처럼 살았다. 세상도 그를 잊어갔다.
안과 밖의 소통이 '박충흠 조각읽기'의 키워드다. '무제'(2001년)
○ 교수직 버리고 은둔끝 15년만에 전시회 열어
그러던 그가 15년 만에 갖는 이번 전시회는 비록 잠시 은둔했으나 발은 언제나 땅을 딛고 서 있던 작가의 치열한 예술혼을 증명이라도 하듯 구도자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구리조각들의 접합 부위에 틈이 생겨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는 작품들은 단절에서 소통, 닫음에서 열림, 거부에서 인정, 작위에서 자연으로 가는 중년 작가의 열린 세계관의 반영이다. 조각가 안규철씨는 “이번 전시에 보이는 작가의 변화는 분석이나 추론의 결과라기보다는 도를 닦듯 마음을 비우는 반복적인 작업과정 중에 서서히 이뤄진 것이라 생각된다”며 “현기증 날 정도로 급속히 변하는 오늘날 미술의 흐름에 비춰보면 박충흠 선생의 변화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라고 말했다.
동판 조각을 그물처럼 이어붙여 세운 이 작품에선 차가운 견고함 대신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무제’(2002년). 사진제공 황윤수씨.
수천 도의 순간적 불꽃에 의지하는 용접작업은 엄청난 집중을 필요로 하는 반복노동이다. 몸에 해롭기 짝이 없는 작업이지만 작가는 한 줄기 사유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강도 높은 노동을 통해 오히려 정신을 쉬게 하고 마음을 비워 낸다고 고백한다. 단단한 금속이 발갛게 달아올랐다가 녹아 붙고 다시 차갑게 식은 뒤의 생생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에서 오히려 사색과 성찰의 울림이 전해져 오는 것은 집요한 노동과 몰두의 에너지가 가져온 역설이기도 하다. 02-391-770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