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석 전 서울 예술의 전당 이사장(74)이 이사장 재직(2001년 6월∼2003년 2월) 중 받은 급료 전액을 ‘뜻있는 일에 쓰라’며 예술의 전당측에 내놓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8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전당측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 알았느냐, 알려지면 곤란한데…”란 말만 되풀이했다.
“뜻있는 일이고 문화 사랑의 마음이 듬뿍 배어나는 미담 아닙니까. 당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얼마나 기부하셨는지 알려주세요.”(기자)
“그분께서 ‘절대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본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분이셨어요. 틀림없이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왜 떠들썩하게 하느냐’며 질책하실 겁니다.”(전당 관계자)
결국 ‘이사장 급료는 월 150만원 안팎’이라는 사실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정 전 이사장의 재임기간은 1년8개월 남짓. 3000여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쾌척하고서도 ‘남이 모르게 하라’는 그의 뜻이 궁금했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경제부총리를 지낸 정 전 이사장은 청년시절부터 콘서트와 오페라 관람이 취미였던 ‘숨은 문화예술 애호가’였다. 2001년 6월 그가 예술의 전당 이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본인은 여러 차례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의 이사장 취임은 한 줄의 보도 자료도 없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는 3년 임기 중 절반을 약간 넘긴 시점에서 ‘조용히 지내겠다’며 자리를 내놓고 떠났다고 전당 관계자는 전했다.
‘별것도 아닌 일’이 알려진 데 대해 본인이 불편해 하더라도 조용한 문화사랑의 마음만큼은 널리 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