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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좀더 빠르게… ‘과학 올림픽’ 별들의 전쟁

입력 | 2004-05-20 20:03:00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유니폼은 ‘로또 유니폼’이라고 비웃음을 사긴 했지만 솔기 이음매로 착용감을 극대화하고 유니폼 안팎의 공기순환을 원할하게 하는 새 기술이 들어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아테네 올림픽이 8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지난 4년간 열심히 훈련을 했다. 선수들만 올림픽을 고대한 것은 아니다. 스포츠용품 회사들도 올림픽을 기다린다.1990년대 이후 올림픽은 스포츠 용품 회사들이 첨단과학기술을 사용해 만든 제품의 각축장이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육상 200m에서 미국의 마이클 존슨은 무게가 겨우 96g인 운동화를

신고 19초32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사이클 경기에는 한 대 제작에만 60억원이 든 ‘뉴 슈퍼바이크’가 등장했다. 100분의 1초를 줄이기 위해, 42.195km를 꾸준하고 빠른 속도로 달리기 위해, 선수들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선수들의 장비에는 첨단기술이 더

해진다. 아테네 올림픽에는 어떤 기술 들이 선보일지 옷과 신발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 저항과의 대결

시드니 올림픽 수영의 33개 금메달 가운데 25개를 가져간 선수들의 공통점은 모두 전신수영복을 입었다는 것이다.

전신수영복은 수영을 잘 하는 상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보통 물이 피부에 닿으면 빙글빙글 맴도는 소용돌이 현상을 일으켜 저항이 늘어나 수영속도가 느려진다. 그러나 상어의 피부에 나 있는 작은 돌기들은 소용돌이를 멀리 몰아내 마찰을 줄이고 속도를 높인다. 따라서 전신수영복은 상어의 돌기처럼 표면을 처리해 물에 대한 저항을 최대한 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진보했다는 전신수영복이 나왔다.

올해 3월 영국의 수영복회사 스피도와 일본의 미즈노사가 발표한 ‘패스트스킨 FSⅡ’.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유니폼은 ‘로또 유니폼’이라고 비웃음을 사긴 했지만 솔기 이음매로 착용감을 극대화하고 유니폼 안팎의 공기순환을 원할하게 하는 새 기술이 들어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이 수영복은 상어의 피부 돌기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에 착안했다. 상어는 물을 정면으로 받는 부분과 물이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부분의 돌기가 다르다. 상어의 코 앞쪽에 있는 거친 조직의 돌기와 좀 더 아래쪽에 있는 부드러운 돌기가 그것이다. 그래서 수영복에 쓰일 옷감도 두 가지를 만들었다.

거친 돌기를 모방한 옷감은 팔과 어깨, 다리 등 주요 부분에 배치해 물과의 저항을 최소화 했고 부드러운 돌기를 응용한 옷감은 가슴과 복부 등 상체에 주로 배치해 유연성을 증가시켰다. 수영할 때 생기는 피하지방조직과 근육의 떨림도 최소화해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

수영복 제작에 앞서 수영하는 사람의 몸을 지나는 물의 흐름과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첨단 전산유체역학(CFD)을 이용했다. CFD는 항공, 해양, 도시설계 등에서 공기의 복잡한 흐름을 컴퓨터에서 수적으로 측정하는 방법. 남녀 수영선수 450명의 몸을 스캐닝한 뒤 컴퓨터상에 평균적인 체형의 3차원 버추얼 모델을 만들어 영상 실험을 했다. 또 실제 마네킹을 만들어 물길 실험도 1000여회를 거쳤다.

회사측은 새 전신수영복이 기존의 전신수영복보다 남성은 4%, 여성은 3%가량 저항을 줄일 것으로 예측했다.

○ 소재와의 대결

마라톤 국가대표 이봉주 선수가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신고 뛴 운동화의 무게는 143g이다. 그러나 마라톤 운동화의 기술 경쟁 목표는 경량화에 있지 않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발이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는가에 있다는 것. 이를 위해 주목하는 것이 바닥, 중간 창, 갑피(upper) 등 운동화의 소재다.

이 선수는 아테네 올림픽용으로 제작된 세 켤레의 신발을 가지고 중국에서 적응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테네의 마라톤 구간 도로가 정비 중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바닥 소재를 우레탄으로 할 것인지 스펀지로 할 것인지 결정해 최종 여섯 켤레를 제작한다.

이봉주 선수가 아테네 올림픽에서 신고 뛸 특별 제작 운동화와 같은 모델인 솔티리.

이 운동화의 갑피는 ‘2중 러셀 메쉬’라는 폴리에스테르 소재다. 선수들이 마라톤을 할 때 신발 내부의 온도는 섭씨 43∼44도, 습도는 95%에 이른다. 달릴 때 생기는 충격열과 마찰열, 체온 그리고 땀으로 ‘정글과 같은 상태’가 되고 따라서 물집이 생기기 쉽다.

그러나 이 소재는 숨을 쉰다고 알려져 있다. 즉 초당 320cm³의 공기를 머금었다가 뿜어내기 때문에 신발 내부에 공기 흐름이 생기면서 습기가 배출되고 온도는 섭씨 38도까지 내려간다.

신발과 마찬가지로 유니폼도 소재의 신기술이 강조된다.

원 안의 번호 때문에 ‘로또 유니폼이냐’는 조롱을 받았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유니폼에는 나이키사의 ‘제로 디스트랙션’과 ‘쿨 모션’이라는 기술이 담겨 있다. 무게 역시 2002년 월드컵 당시 185g(상의)에서 30g 줄었다.

제로 디스트랙션은 원단과 원단 사이에 얇은 섬유 조각을 대고 용접하듯 열을 가해 이음매를 접착한 것이다. 유니폼의 솔기에 피부가 쓸리지 않도록 막고 무게를 줄일 수 있다.

마라톤 선수의 신발 속이 정글과 같다면 축구선수의 유니폼 상의는 열대 우림이다. 쿨 모션은 몸의 열과 수분을 빠르게 배출하고 외부 공기는 몸 안으로 흐르게 한다. 신축성이 높은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하되 땀이 많은 겨드랑이 부분은 성기게 짠 그물 조직의 옷감을 덧대고 어깨는 촘촘한 그물조직을 사용해 공기 순환을 원활하게 했다는 것이다.

○ 기술이 금메달을 따는가

시드니올림픽에서 전신수영복이 금메달을 휩쓸자 한동안 ‘전신수영복 논쟁’이 일었다. 전신수영복을 구입하지 못한 국가의 선수들에게는 너무 불공정한 경쟁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전신수영복이 서너 차례 입고나면 탄력성을 잃거나 신체의 진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조업체들이 밝히지 않는다고 꼬집는 사람들도 있다. 호주의 이안 서프 같은 최정상급 수영선수들이 매 경기마다 새 전신수영복을 입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에 최첨단 기술이 접목되면서 선수들 간의 격차는 아주 작아졌다. 그러나 격차가 작아질수록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 당일에 100%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는 금메달을 따기 어렵다. 게다가 후진국 출신이어서 첨단 장비를 구입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경쟁하기는 더욱 어렵다. 몇몇 특정한 조건을 갖춘 국가의 선수들만 참여하는 종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첨단 기술이 아무리 스포츠를 발전시킨다 해도 경기장에서 땀을 흘리며 경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