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두보는 음중팔선가에서 이백을 두고 ‘말술에 백편의 시를 짓는다’고 표현했다. 자칭 취선옹(醉仙翁), 술에 취해 물에 비친 달을 따려다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까지 나도는 걸 보면 이백은 역시 동서고금을 통틀어 첫손가락에 꼽히는 주당이다.
그의 시 역시 술을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술 권하는 노래 ‘장진주(將進酒)’에서 그는 ‘소를 잡고 양을 삶아 즐겁게 놀아보세, 우리 서로 만났으니 300잔은 마셔야지’라고 노래한다.
300잔, 그의 호방한 기개에 감동하면서도 의구심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100년 3만6000일 동안 하루에 300잔씩 마시리라’는 ‘양양가(襄陽歌)’에 이르면 이젠 의구심 차원이 아니라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밀려온다.
300잔. 40도가 넘는 중국 독주는 물론이고 소주나 막걸리도 어렵다.
당대의 시인인 이백은 701년 태어나 762년에 세상을 하직했다. 중국의 허만쯔(何滿子)가 지은 ‘중국의 술 문화’를 보면 증류 기법은 송대에 처음 등장했다. 송이 건국한 연도는 960년으로 이백이 죽은 후 200년이나 뒤의 일이다. 술은 증류를 하지 않으면 20도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300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소주잔에 맥주를 따라 마셔도 300잔이면 1만cc가량 된다. 한자리에서 이 정도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더욱이 이백이 소주잔으로 술을 홀짝거린다고 상상하니 불경죄를 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증류주가 있었더라면 이백은 300잔이 아니라 30잔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얼마 전 ‘술 안 취하는 약’이 러시아에서 개발됐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개인적으론 ‘이런 약이 왜 필요할까’ 하는 게 의문이었다. 취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왜 술을 마시는지.
이백이 이 소식을 들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장진주’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멋진 음악이나 맛있는 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만 오래 취해 깨어나지 않는 것을 원할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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