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들에게 벽화를 그리는 즐거움뿐 아니라 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인터넷 다음 카페 ‘거리의 미술 동호회(거미동·cafe.daum.net/streetart)’는 벽화를 그리는 아마추어 미술가들의 모임.
인터넷 ID ‘왕거미’로 통하는 운영자 이진우씨(40)가 2000년 6월 처음 홈페이지를 개설할 때만 해도 각종 벽화에 대한 정보 공유가 목적이었다.
조선대 미술대 회화과 83학번인 이씨는 평소 난잡한 상가나 무미건조한 주거공간을 개선하는 ‘환경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20, 30대 대학생과 직장인 등 회원이 3000여명으로 늘어난 지금도 회원들은 매달 한 차례씩 벽화 공부모임을 갖고 있다.
모임 초기 회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소득층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벽화를 그려주자”는 제안이 내부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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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들이 4년 가까이 잿빛 벽을 천연색으로 바꾼 전국의 사회복지관과 장애인복지시설, 저소득층 주거지역, 공부방 등은 50여곳에 달한다. 가능하면 시설 수용자나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꾸미면서 노동과 환경미화의 즐거움을 공유한다.
벽화를 그릴 장소는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추천받은 후보지를 대상으로 회원들이 투표로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상업적인 활동은 철저히 배제된다.
회원 대부분은 2002년 6월 시각장애인학교인 인천 혜광학교에서의 봉사활동을 잊지 못한다. 이씨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한 학생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꽃의 색깔을 상상하면서 벽화를 그리기에 참여한 뒤 ‘아름답다’고 말했을 때 회원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고 말했다.
거미동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반 자선단체와 달리 벽화작업에 필요한 페인트 값 중 일부를 벽화를 그려준 시설에서 받고 있는 것.
이씨는 “시설 규모에 따라 1만원 정도를 받기도 한다”며 “이는 수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사는 돈’이라는 의미로 흔쾌히 주고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미동 회원 정미선씨(27·여)는 “우리가 즐거운 동시에 남들도 즐거워하는 일을 한다는 게 거미동의 매력”이라고 자랑했다.
최근 거미동 회원과 아파트 담벽 벽화작업에 참여했던 관악구 신림10동의 주공2단지 임대아파트 주민 김명희씨(47·여)는 “난곡지역 재개발지역에서 이사 온 판자촌 주민들이 그날 이후 웃음을 되찾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이진우씨(오른쪽)를 비롯한 ‘거리의 미술 동호회’ 회원들이 1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벽화공부모임을 갖고 있다.-원대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