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화씨 911’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환하게 웃고 있는 미국 감독 마이클 무어. AP연합
전통적으로 거장의 예술영화를 선호해 보수적이라고 비판받아온 칸 국제영화제가 올해엔 ‘변화’를 선택했다.
제57회 칸 국제영화제는 23일 주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파격적인 수상작 리스트를 발표하며 막을 내렸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것.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꼬집은 이 영화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데다 다큐멘터리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최고상을 수상했다. AP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칸 영화제가 반(反)부시 다큐멘터리에 최고상을 줌으로써 미국 대통령 선거를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지 시사회와 기자회견에서 열광적 환호를 받았지만 영화제의 이전 성향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의 수상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무어 감독은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시상식 무대에서 귓속말로 자신에게 “‘우리(심사위원)는 정치적 상을 주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다. 당신(무어)은 위대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상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사실 올해 칸 영화제는 ‘킬 빌’ 시리즈의 타란티노 감독이 심사위원장이 됐을 때부터 조용하기보다는 ‘화려하고 시끄러운’ 축제가 될 것으로 예고됐다. 결국 이번 영화제의 수상작 발표는 예상대로 세계 영화 팬들을 위한 이벤트라도 되는 듯, 극적인 장면의 연속이었다.
특히 아시아 영화에서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한 것이 올해의 달라진 모습이다. 경쟁작 19편 가운데 6편의 아시아 영화가 진출했는데 ‘올드 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태국 영화로 사상 처음 경쟁 부문에 진출한 ‘트로피칼 맬러디(Tropical Malady·열대병)’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이에 덧붙여 쟁쟁한 어른 배우들을 제치고 축구 선수와 배우의 길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는 14세 일본 소년 야기라 유야(柳樂優미)에게 남우주연상이 돌아간 것도 이변이었다. 그는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이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중국 배우 장만위(張曼玉)는 전 남편 올리비에 아사야시 감독이 연출한 프랑스 영화 ‘클린(Clean)’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