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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가 무너진다]원자재난 ‘직격탄’

입력 | 2004-05-23 18:13:00


《대통령까지 나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중소기업들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경기침체와 인건비 상승, 만성적인 자금난에 원자재난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고 있다. 아예 공장을 팔고 사업을 포기하거나 더 많은 기회가 있는 중국으로 떠나는 기업인이 점차 늘고 있는 현실이다. 중소기업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면 한국은 몇몇 대기업에 의존해 살아가는 경제구조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3회에 걸쳐 일선 중소기업이 직면한 현장 상황을 전달한다.》

“5월 들어 탄소강과 합금강의 가격이 또 올랐다. 지난달 납품(판매)가격이 소폭 올라 한숨 돌리는가 했는데….”

경기 용인시에서 자동차부품용 단조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Y사장(64)은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매달 달라지는 원자재가격을 정확하게 외우고 있다. Y사장의 사무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것은 경영이념이 아닌 월별 원자재 가격표이다.

원자재가격 상승과 내수 침체 등으로 중소기업들의 한숨소리가 커지고 있다.

▽달력을 넘기기 두렵다=Y사장이 주로 구매하는 원자재인 탄소강 가격은 작년 말 t당 49만5000원에서 5월부터 66만5000원으로 34% 올랐다. 합금강도 33% 상승했다.

이 업체는 철강재를 구입해 자동차 기초부품을 만들어 1차 부품업체에 납품하기 때문에 원자재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납품가격은 4월에야 일부 인상됐다. 40여개 거래처 가운데 절반 정도가 18%, 나머지 업체들이 10∼14% 납품받는 가격을 올려주었다.

“계속 오르는 원자재가격 때문에 가을이 두렵다. 가격이 오를 때마다 (납품가를) 올려 달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탄소강과 합금강 가격은 달력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3∼10%씩 올랐다.

“할 말은 못되지만 다른 업체가 쓰러져 ‘사회문제’로 커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본격적인 대책이 나올 테니….”

그는 유가 인상에 따라 전기료마저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전기로 철강재를 달구어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올가을 대규모 감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그런 사태가 없기를 고대하고 있다.

▽내수업종은 더 어렵다=경기 김포시에서 교육용 플라스틱완구 공장을 운영하는 S사장(56)은 원재료인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올해 20∼30% 올랐지만 이를 판매가격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올 어린이날 매출은 작년의 절반에 그쳤다. 내수경기가 안 좋고 중국제품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할 수도 없다.”

그는 가격을 올릴 수 없어 수출도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직원이 퇴직해도 새로 채용하지 않고 있다.

그는 업계 사장들이 모이면 직원을 감원해서라도 고정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뿐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동종 업체 5곳이 올해 들어 문을 닫았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각종 상하수도 밸브를 정부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63)은 “원재료인 주물의 가격은 올해 30∼40%나 올랐는데 납품가는 아직 그대로”라며 “20여년 일해 구입한 공장 부지를 팔고 임대해 버틸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밸브업체 사장은 “우리는 허리가 휘는데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기업은 1·4분기(1∼3월)에 엄청난 흑자를 냈다는 기사를 보니 기가 막히더라”며 혀를 찼다.

경기 용인시에서 섬유 원사를 만드는 S사장(62)은 “유가 상승으로 공장 기계의 절반을 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현지에 부지를 물색해 놓았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많지 않아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 베트남으로 가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사업을 포기할 생각이다.”

이 업체도 원재료인 폴리프로필렌 가격이 작년 말 t당 85만원에서 현재 104만원으로 올랐지만 판매가격에 1원도 반영하지 못했다. 작년 초 100여명이던 직원은 현재 30명으로 줄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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