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립극단의 ‘검찰관’에서 여관집 하인 역으로 특별출연한 손학규 경기도 지사(맨 오른쪽). 사진제공 경기도립극단
“뭘 봐, 이 놈의 자식!”
22일 오후 경기 수원 경기도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 러시아 희곡작가 니콜라이 고골리의 연극 ‘검찰관’. 여관집 하인 역으로 특별출연한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여관비를 안낸 가짜 검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 극 중 시장(市長) 역을 맡은 배우가 호통 치자 흠칫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객석에서는 “와우” 하는 탄성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검찰관’은 도박으로 여비를 몽땅 털린 홀레스타코프라는 청년이 자신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비밀 파견된 검찰관으로 오인한 지방의 탐관오리들을 실컷 우롱한다는 내용의 사회풍자극. 풍자의 대상인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무대에 출연해 욕을 먹으니 관객들은 더욱 큰 흥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연극은 경기도립극단으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의 공훈연출가인 쿠진 알렉산드리아 세르게이비치를 초청해 만든 외국인 연출가 무대. 과연 ‘연출의 힘’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탁월한 심리묘사와 세련된 무대 구성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팽팽한 긴장감을 더해갔다. 시장, 재판소장, 우체국장, 교육감, 자선병원장 등이 가짜 검찰관에게 줄줄이 뇌물을 갖다 바친다. 급기야 시장이 가짜 검찰관과 딸과의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창피 당하는 장면에선 동서고금을 막론한 지도층의 ‘속물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관객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재학 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했다는 손 지사는 이날 세 장면에 등장해 적지 않은 대사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도지사의 출연소식을 몰랐던 사람들은 그냥 전문배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손 지사는 공연 보름 전부터 오후 10시 이후 밤 시간을 활용해 맹렬하게 연기연습을 해왔다. 연출가는 당초 손 지사의 대사를 줄여줄 생각이었으나 예상외로 대사 소화력이 좋다는 판단아래 원래대로 대사를 맡겼다.
이 작품은 28∼30일 서울로 무대를 옮겨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손 지사는 서울 공연에는 출연하지 않으며 6월12일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다시 열리는 이 공연에 출연한다. 031-230-3274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