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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 사인 훔치기에도 룰이 있다

입력 | 2004-05-24 18:23:00


해마다 시즌만 되면 논란이 되는 프로야구의 사인 훔치기.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23일 대전에선 기아 서정환 수석코치가 한화의 의혹 제기에 이은 문승훈 주심의 경고에 항의하다 퇴장 당했다.

발단은 한화 유승안 감독이 3-3으로 맞선 7회 2사 2,3루 심재학 타석 때 “기아 벤치가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비롯됐다. 이에 문 주심이 주의를 줬지만 포수 신경현이 사인을 낸 뒤 심재학 몸쪽으로 바싹 붙어 앉자 또다시 “몸쪽, 몸쪽”이란 소리가 나오면서 시비가 시작됐다.

한화는 18일 LG와의 대전경기에서도 조인성에게 쐐기 3점 홈런을 맞았을 때 LG 벤치가 조규수의 몸쪽 직구를 ‘인성아’라고 미리 소리를 질러 알려줬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터. 게다가 서 코치는 예전 1루 코치 시절부터 사인 훔치기의 명수로 통했던 요주의 인물이었다.

문제는 사인 훔치기가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는 것. 기자의 생각을 말하면 정상적인 사인 훔치기는 규정위반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3루 작전코치는 현란한 몸동작으로 사인을 낸다. 상대팀은 그 사인을 읽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현대 김재박 감독은 2년 전 LG가 이광근 3루 코치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집중분석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개의치 않았다. 일본 세이부 라이온스의 이하라 전 감독은 상대 투수의 미묘한 버릇까지 간파해내는 ‘현미경 눈’으로 존경을 받았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사인 훔치기와 전달 방법이다. 더그아웃 안의 상대 감독 움직임과 주자가 2루에 있을 때 포수가 허벅지 사이로 내는 사인까지 훔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또 간파한 사인을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소리나 전파를 이용해 전달한다든가,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된다.

‘세상에 울려 퍼진 한 방(Shot Heard Round the World)' 이란 바비 톰슨의 극적인 홈런으로 유명한 1951년 뉴욕 자이언츠의 내셔널리그 우승은 대표적인 불법 사인 훔치기의 결과다.

2000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자이언츠가 시즌 막판 브루클린 다저스에 13.5게임차까지 뒤져 있었지만 기적의 16연승에 성공, 동률을 이룬데 이어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톰슨의 홈런으로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한 것이 철저한 사인 훔치기에 의한 것이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자이언츠는 외야에서 훔친 사인을 불펜의 버저 시스템을 이용해 선수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가 서로 속이는 게임이라고 하지만 속이는 데도 정도가 필요한 것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