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 당시 “빵을 달라”고 분노하는 군중을 보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가. 결국, 혁명 이후 프랑스는 누구나 손쉽게 빵을 구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빵 값의 일부를 보조했다. 더 이상의 굶주림은 없어졌지만 그 빵의 품질은 그저 끼니나 때울 정도의 열악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수도사업이 처한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모든 국민이 풍부하게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는 수도요금을 생산비용보다 싸게 받고 있다. 생산비를 물 값으로 충당하지 못하니 적자는 당연한 일이다. 이로 인한 전국 수도사업의 부채는 4조원이 넘는다. 부채를 일반 세금으로 겨우 메우는 상황에서 시설 개선까지 할 예산은 엄두도 못 낸다. 이렇게 투자를 하지 않았으니 수돗물 원가에는 시설투자비가 반영되지 않게 됐다. 앞으로 수돗물 값을 100% 현실화한다고 해도 노후시설 개선을 위한 투자 예산은 없는 요금구조다. 누구에게나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는 단계는 되었지만 수질을 고급으로 만들 구조는 아닌 것이다.
이처럼 공익을 위해 적자로 운영되는 사업을 민간에 맡길 수 있을까? 결국 수도사업은 공기업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도사업은 생산자가 동시에 수질규제 감시자도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서울 등 대도시는 예산과 기술 지원이 비교적 원활하고 자체 수질감시 시스템과 함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질평가위원회’도 운영하는 등 노력하고 있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 중소도시는 사정이 다르다.
수도사업은 ‘빛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사실 지방자치단체장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당연히 수도 사업에 사용할 예산이 있을 리 만무하다. 중간관리자는 당면한 ‘문제’와 개선할 예산이 없는 ‘현실’ 사이에서 종종거리다 수질사고라도 나면 혼자 책임져야 한다. 최근 불거진 울산시 수질검사 결과 왜곡 보고 사건이 수질연구소장을 중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면에는 이런 수도사업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허준 선생이 명의로 후대에까지 존경을 받는 이유는 임시방편의 치료보다 병의 근원을 파악해 그 뿌리부터 치료했기 때문이다. 지방 수도사업도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수도사업의 수입을 늘려 적자구조를 면할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생활에 필수적인 사용량까지는 저렴한 비용에 공급하고 점차 누진제를 적용해 요금을 가중하는 방법도 고려해봄 직하다. 생산과 감시 기관을 분리해 수질을 엄격히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임시방편에만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수돗물에 대한 신뢰는 믿어 달라고 애원해서 얻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더 미루면 안 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단체장이 수도사업에 관심을 갖도록 시민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수돗물 문제가 시장 군수의 당락에 영향을 준다면 수도사업의 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최승일 대한상하수도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