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탈출을 알리는 소중한 승리였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스타 이형택(28·삼성증권·사진)에게 올 시즌 초반은 시련의 연속. 2월 결혼 이후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오히려 성적 부진에 시달렸다. 2월 시벨오픈 8강전 진출 이후 남자프로(ATP)투어 대회에서 4연속 1회전 탈락. 데이비스컵에선 지독한 감기 몸살로 제대로 뛸 수조차 없었다. 지난달에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세계 랭킹이 100위 밖으로 추락하면서 이대로 선수 생활이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느꼈다.
그러던 이형택이 26일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에서 열린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1회전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으로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세계 123위 이형택은 3시간11분의 풀세트 접전 끝에 세계 46위 로빈 소더링(스웨덴)을 3-2(0-6,3-6,6-3,6-4,7-5)로 눌렀다. 이 대회에서 2년 연속 1회전 탈락 끝에 첫 2회전 진출. 2000년 US오픈에서 16강 신화를 이룬 이형택은 이로써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1승 이상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랭킹 하락으로 본선 자동출전권을 놓친 이형택은 예선 결승에서 패하면서 8연속 메이저 대회 출전이 멈추는 듯 했다. 그러나 3일을 기다린 끝에 행운의 러키 루저(결원에 따른 출전자) 자격을 얻어 막차로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극적인 역전승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이형택은 와일드카드인 세계 99위 올리비에 파티앙스(프랑스)와 2회전에서 맞붙는다. 그라운드 스트로크가 주무기인 파티앙스는 올해 호주오픈에서 거둔 3회전 진출이 메이저대회 최고성적이어서 해볼만한 상대. 삼성증권 주원홍 감독은 “형택이가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났으며 클레이코트에서 다양한 구질을 가지고 있어 승산은 충분하다”고 예상했다.
배꼽이 드러나는 원색의 투피스에 커다란 분홍색 귀걸이를 하고 나온 세레나 윌리엄스(미국)는 이베타 베네소바(체코)를 2-0(6-2,6-2)으로 완파했다.
94년 윔블던 이후 10년 만에 메이저대회 단식에 출전한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47·미국)는 19세의 기셀라 둘코(아르헨티나)에게 0-2(1-6,3-6)로 패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