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부산 녹화를 마친 허동환은 고향인 부산 팬들이 보여준 환대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오락프로그램 패널 출연 섭외를 받았다”며 “사람들이 잘 모를까봐 ‘허둥’으로 출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철민기자
‘올해는 뜬다.’
KBS2 ‘개그콘서트’(일 밤 8:50) ‘개그대국’ 코너의 ‘허둥 9단’ 허동환(30)이 지난해 초 휴대전화 화면에 입력한 문장이다. 그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는 올해 그 소원을 성취했다. ‘개그대국’에서 5 대 5 가르마와 어벙한 표정 개그로 떴기 연문이다. 그가 나오는 새 코너 ‘허둥 가라사대’가 편집 삭제됐을 때 시청자게시판에 항의 글이 수십 건 올라온 적도 있다. 그는 ‘올해는 뜬다’를 ‘감사합니다’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허동환은 1992년 경성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2기 ‘대학개그제’ 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동안 ‘코미디 세상만사’ ‘한바탕 웃음으로’ 등에 출연했지만 존재조차 알리지 못했다. 최근에야 떴는데 그동안 12년이 걸린 셈이다.
‘개그대국’은 특정 단어와 유사한 발음의 단어를 넣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코너로 개그맨들의 순발력과 재치를 엿볼 수 있다. ‘밥상 위의 반찬 이름’이라는 주제가 정해지면 “내가 술 먹으면 개란 말이(계란말이)야?”라고 하는 식이다. 이 코너는 허동환과 더불어 사회자인 윤석주, 해설자 박성호, 상대 대국자 장동혁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TV에서 비치는 모습과는 달리 그는 잘생긴 편이다. 그는 “안 뜰 때는 웃기지 않게 생긴 내 외모를 원망했다”고 말한다.
‘개그대국’에서 그를 소개하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그는 ‘부산 가람중 교장선생님 속쓰림의 원인’이고 ‘개그맨 이창명과 동기’다. 아버지인 부산 가람중 허식 교장의 사무실 문을 불쑥 열고 “허둥 9단 아버지 진짜 맞으세요?”라고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10년 가까이 제대로 된 출연작이 없자아버지는 “한 직장에서 10년 있으면서 성공 못하면 그만둬라”며 아들을 부산으로 데리고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날아갈 것 같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30일 ‘개그콘서트’의 방청석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소개된다.
허동환은 무명시절을 견뎌내고 성공했다.
“신인 때 못 나가는 선배들이 참 안돼 보였어요. 그런데 그게 내 모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반지하 자취방 세월도 3∼4년이면 낭만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기간이 길어지니까 오기가 생겼어요. 저도 단맛은 봐야하지 않겠어요.(웃음)”
그는 1998년 겨울 얼음장 같은 자취방에서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이불만 뒤집어쓰고 누워 있다가 병원에 실려 갔다. 2000년에는 부산 집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아버지의 신용카드를 훔쳐들고 다시 서울로 와 여관을 전전하기도 했다. 선배 개그맨의 운전기사도 웨이터도 해봤다. 한 PD로부터 “개그맨 그만둬라”는 말을 듣고 울기도 했지만 ‘꼭 뜬다’는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은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자격지심이 많았는데 요즘은 사는 게 너무 좋아요. 하지만 초심을 잃진 않을 겁니다. 늘 신인이어야죠.”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