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가 오른쪽인 차의 운전자들은 주차장에 들어갈 때 기다란 집게를 쓰기도 한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경찰이 차를 세우고 음주측정기를 들이댄다. 창문을 내리고 불자 삑 소리가 나며 불이 들어온다. 술을 마셨다는 신호다.
“자, 차에서 내려주십시오.”
“내가 왜 내려요?”
“술 마시고 운전하셨잖아요. 빨리 내리세요.”
“술은 마셨는데 누가 운전을 했다고 그래요?”
자동차 실내를 주의 깊게 본 경찰은 쓴웃음을 짓고 만다.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승용차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챈 것이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취객이 음주측정기를 불었던 것이다.》
○ 운전대가 오른쪽
일본 도요타의 스포츠카 ‘MR S’를 운전하는 이삼규씨(33·보라매바이크 매니저)가 얼마 전 실제로 겪은 일이다. 이씨는 “술에 취한 선배를 조수석에 태웠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운전대가 오른쪽에 달린 자동차는 일본이나 영국처럼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에서 내수용으로 생산된 것. 유학생 등이 현지에서 타다가 한국으로 가져왔거나 일부는 중고차로 수입돼 한국에서 돌아다닌다. 전국에 몇 대가 있는지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도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행법 상 오른쪽 운전대 자동차도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교통 체계가 왼쪽 운전대 자동차를 기준으로 돼 있기 때문에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우선 주차장에 들어가거나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상당히 곤란하다. 이럴 땐 차를 세워놓고 내리거나 기다란 집게를 이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여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 경찰에선 몇 년 전부터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종 단속 카메라 사진에서 조수석 부분을 자동으로 지우고 있다. 이런 사진을 보면 투명인간이 운전하거나 자동차 혼자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씩 일본 자동차를 운전해도 실수를 한다. 이씨는 “깜박이를 켠다고 스위치를 넣었는데 윈도 브러시가 움직이거나 주차된 차에 올라타려고 왼쪽에 가서 문을 여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마련됐던 수입선 다변화 정책은 1999년 해제됐다. 이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국시장에 본격 진출한 도요타 렉서스는 BMW와 수입차 판매대수 1위를 다투고 있다. 올해 들어 혼다와 닛산도 한국 시장을 노크하고 있어서 일제 차의 한국시장 장악은 더욱 속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차량은 모두 수출용이기 때문에 운전대가 왼쪽에 있다.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일본 자동차는 갈수록 희귀해질 전망.
○ 괴로운 ‘맥’ 유저들
서울대 매킨토시 동아리 회원들이 동아리 방에 모였다. 이들은 “불편한 점이 있어도 맥이 가진 장점이 훨씬 더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승기자
매킨토시(일명 맥) 컴퓨터 사용자들의 모임인 애플포럼(www.appleforum.com) 로고에는 ‘괴로운 한국 맥 사용자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현재 한국의 맥 사용자는 약 20만명. 한국은 인터넷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로 꼽히지만 맥이 아닌 일반 PC를 사용할 때만 그렇다.
이달 들어 신한은행에서 선보인 ‘신한 매킨토시용 이지플러스 2.0’은 매킨토시 사용자를 위한 첫 인터넷 뱅킹 프로그램이다. 다른 모든 금융 서비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기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매킨토시처럼 윈도가 아닌 운영체제를 쓰는 컴퓨터 사용자는 쓸 수 없다.
인터넷 업체에 근무하는 김진중씨(26)는 “매킨토시를 사용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MS 워드와 함께 가장 많이 쓰이는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인 ‘한글2002’로 작성된 문서도 열리지 않고 국내에서 개발된 채팅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게임도 사용할 수 없다.
5년째 매킨토시를 사용하고 있는 한민석씨(20·대학생)는 “집에 초고속인터넷(ADSL)을 깔기 위해 업체 직원이 왔다가 매킨토시인 것을 보고 그냥 돌아간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맥 초보자는 주변에 맥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물어볼 곳도 마땅찮다. 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애플포럼은 2001년 만들어졌는데 회원수가 5000명에 이른다.
○ 자발적인 마이너리티
마이너리티는 원래 동성애자처럼 사회적으로 약자이면서 소수인 집단을 의미하는 말. 오른쪽 운전대 차량의 운전자와 맥 사용자들은 이를테면 스스로 마이너리티를 선택한 경우다. 왜 사서 고생을 할까.
오른쪽 운전대를 선택한 운전자들은 호기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중고차 매매 사이트를 둘러보면 처음부터 신차를 구입해 타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중고로 구입해 1, 2년쯤 타다 다시 중고로 되판다.
맥 유저들은 그래픽 작업을 할 때 맥의 성능이 탁월한 데 매료된 경우가 많다. 보컬그룹 황신혜밴드의 리더 김형태씨는 “인터넷을 사용할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맥이 가진 모든 장점을 버리는 건 바보짓”이라며 “2인승인 포르셰가 좁다고 7인승 승합차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91년부터 지금까지 맥을 고집하고 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