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영/정문술 지음/270쪽 1만원 키와채
한국엔 ‘사장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300만명 가까이 있다. 대기업, 중소기업 대표자들이다. 구멍가게 대표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이들의 고뇌를 아시는지? 종업원들 눈에는 오너 사장은 돈 많고, 직장에서 잘릴 걱정 없어 좋아 보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장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때 맞춰 월급과 납품대금을 챙겨주는 것은 기본이다. 경기가 나쁘면 매출이 뚝 떨어지고 아차 하면 부도위기에 빠진다. 종업원이야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되지만 오너 사장은 재산을 날리고 구속되기도 한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떵떵거리며 산다”는 말도 일부 약삭빠른 기업인에게만 해당되는 말….
사장은 회사 일 처리도 힘든데 경영과 관련 없는 무수한 청탁에마저 시달려야 한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 정치권에서도 손길을 뻗어온다.
‘벤처 대부’라 불리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사장(현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의 저서 ‘아름다운 경영’을 보면 이 땅에서 사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1983년 설립된 미래산업은 반도체 제조장비인 마운터를 생산하는 벤처업체. 저자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서 18년간 근무하다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고 세운 회사다. 그는 이 회사에서도 18년간 일한 뒤 2001년 1월 초 은퇴했다. 책 일부를 옮겨보자.
‘나의 은퇴는 벌써 옛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지인들의 취직 청탁은 심지어 정원 관리, 공장 청소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이 밀려온다. 은퇴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저자는 동창회는커녕 고향에도 발걸음을 끊어 향리 어른들로부터 ‘후레아들놈’이란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 책엔 미래산업을 키운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저자의 은퇴 이후의 생활. “수백억원의 재산을 어떻게 하면 보람 있게 쓰느냐, 품위 있는 은퇴생활은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300억원을 쾌척했다. 바이오시스템 학과의 신설을 조건으로…. 한국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열쇠가 바이오테크와 정보기술, 기계기술 등의 융합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생색내기를 싫어하는 그는 자신의 기부금으로 건설된 ‘정문술 빌딩’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 그의 부인이 어느 날 “5억원만 내 통장에 넣어달라”고 요구하더란다. 워낙 알뜰한 부인이었기에 돈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 용처가 궁금했다. 몇 달 뒤 우편물 뭉치를 뒤적이다 시각장애자선교단체에서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부인이 ‘익명의 기부자’로 2억원을 기부한 데 대한 감사의 글이었다.
기업인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으신지? 탐욕스러운 부류의 인간이라고 지레 경멸하고 있지 않으신지? 이 책을 읽고 나면 기업인도 존경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인물이라는 점을 깨달으시리라.
고승철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