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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조완제/일본의 두모습 ‘反北’과 ‘韓流’

입력 | 2004-05-28 18:52:00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 당시 한 일본 대학생에게서 e메일을 받았다. 피해자를 도울 방법이 없겠느냐며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었다. 개인적 관심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 대학에선 대구지하철 참사와 관련한 모금활동이 벌어져 한국에 성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모금운동은 국경을 뛰어넘은 인간애로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5월. 한국 시민단체와 언론매체들은 북한 용천역 폭발 참사와 관련해 대대적인 성금모금 행사를 벌였다. 그러나 용천 참사를 바라보는 일본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나에게 북한에 성금을 보낼 방법을 물어오는 일본 학생이나 지인은 한 명도 없었다.

요즘 일본 언론은 22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제2차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납북 일본인과 그 잔류 가족의 처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 뒷얘기를 비롯한 각종 북한 관련 기사들이 경쟁적으로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북한 현실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최근 일본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반북 감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두고 한 정치학 교수는 “1980년대 후반 미일 통상마찰이 심각했을 때 미국 내에서 횡행했던 ‘일본 때리기’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핵문제, 미사일문제 등을 포함하여 이래저래 북한은 요즘 일본 국민에게 가장 손쉽게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버린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일본에서 부는 또 하나의 한반도 관련 ‘바람’이 있다. NHK에서 방송되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를 앞세운 한국문화 열풍이다. 일본 언론은 한국 연예계 소식과 한국문화 소개 프로그램을 대폭 늘리고 있다. 월드컵 이후 한국 연예산업이 다시 한번 일본에서 한국을 긍정적으로 알리는 기폭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인들의 상반된 시각을 바라보는 재일 한국인들의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 2002년 9월 제1차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일본인 피랍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했을 때 친북한 총련계는 물론, 재일거류민단측까지 ‘납치 관련자’로 오인돼 도매금으로 비난을 받았던 것은 일본인들의 복잡한 ‘한국 인식’을 반영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국민이 갖는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한민족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의 ‘북한 때리기’가 궁극적으로 남한에 대한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진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일 관계가 북한이라는 변수로 인해 후퇴해서는 안 된다. 한국정부는 보다 발전적인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 한국 혹은 한민족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밑바닥 정서를 예의 주시하고, 그 정서의 변화 추이를 따라갈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할 때다. 한국의 몇몇 연예인들이 만드는 긍정적인 한국 이미지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이미지 구축 작업을 연예산업에만 맡길 수는 없다. 드라마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조완제 일본 다쿠쇼쿠대 강사·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