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남편이 20대 중반의 아내를 데리고 와서 치료를 요구했다. 그는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아내가 살림은 멀리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해서다. 밤늦은 귀가에 최근에는 외박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지적하면 오히려 화를 내니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게 남편의 주장이었다.
처음에 상담을 거부하던 부인이 입을 열었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면서 저 모르게 개인사업을 시작했어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에만 매달리죠. 성실함은 존경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을 채워주진 않아요. 결혼생활이 이렇게 끝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고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남자를 만난다고 남편은 오해를 하는데 자신을 그런 부류로 대하는 게 화가 난다고 했다.
남편은 가난한 집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다른 형제보다 사랑을 받지 못해 일찍 집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경제적 자립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부인이 불만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부인은 술을 좋아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 사이에서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겸손하고 책임감 있는 남편에 끌려 결혼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한 후 늘 일에 쫓겨 다녔다. 마치 버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아직 미혼인 친구들과 노는 데 재미를 붙인 것이다. 늦은 귀가로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자꾸 추궁을 당하니 구속받기 싫다는 반발심이 생겼다.
남편은 자신이 일에 치우쳐 사랑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일찍 귀가해서 부인과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고 처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부인은 이미 습관이 돼 버린 외출과 늦은 귀가를 쉽게 고치지 못했다.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했지만 남편의 이해와 협조가 큰 힘이 됐다. 지금은 부인도 어느 정도 마음을 잡고 안정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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