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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눈높이 육아]시험 못볼까 불안에 떠는 아이

입력 | 2004-05-30 17:19:00


훈이가 가져온 성적표를 본 엄마는 기가 막혔다.

초등학교 시절 줄곧 상위권을 지키던 아이가 중학교에서 본 첫 시험에서 중위권에 겨우 턱걸이했던 것이다. 화를 내는 엄마에게 훈이는 너무 긴장해서 실수했다며 학기말 때에는 잘하겠다고 울먹였다.

하지만 학기말 고사가 다가와도 훈이는 쉽사리 공부를 시작하지 못 하고, 겨우 시작해도 집중을 못한다. 자신감이 넘쳐 오히려 잘난 척하는 것 같던 초등학생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이다. 엄마는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아이를 소아정신과에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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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과 검사 결과 훈이는 심한 시험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의력 결핍이나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펼치게 하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했다.

시험 불안을 겪는 아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미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주눅이 들어 있어 시험을 볼 때에도 심한 불안을 느끼는 자신감이 매우 없는 아이들과, 겉으로는 아주 자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 밝혀질까 걱정하는, 백조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오리발질을 하고 있는 경우다. 훈이는 뒤쪽이었다.

훈이와 같은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지거나, 스스로 만든 높은 기대치에 맞추려 노력한다. 그렇게 해서 냉정하거나 바빠서 아이에게 무관심한 부모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거나, 그와는 정반대로 엄격하고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부모를 안심시키고 야단을 덜 맞으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단순한 과제에서는 성공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 받고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자신감이 부족하고, 실패했을 경우 돌아올 결과가 두렵기 때문에, 복잡한 과제에 부닥쳤을 때 실수를 하고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곤 한다.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위로를 받으며 다시 일어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맷집이 약한 것이다. 시험 불안이 심할 때에는 시험을 앞두고 불안에 지쳐 무기력해지거나, 집중이 전혀 안 되거나, 두통 위장장애 불면증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혹은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는 증상을 보인다. 심한 경우에는 극도의 무력감과 분노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기도 한다.

훈이의 부모는 치료를 통하여 겁에 질려 있는 훈이의 본모습을,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를 보게 됐다.

부모가 실망할까 두려워하는 아이를 위로하고 안심시키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항불안제와 상담의 도움으로 훈이도 시험이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확인하는 것이지, 자신의 가치에 등급을 부여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공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실패했을 때 위로하고 함께 대책을 세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의 존재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훈이는 이제 성공하는 경험들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만 남겨두고 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