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운이 좋은 정치인이다. 한번 도전해 바로 정권을 움켜잡았다. ‘화끈한 투자’와 좋게 보면 서민적이고 소탈한 언행, 과거보다 복잡하게 얽힌 지역주의, 상대 진영에 대한 효과적 공세가 맞물려 ‘깜짝 성공’을 만들어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받았지만 오히려 기회로 바꿔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대통령의 화법(話法)을 빌리면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는데 사주가 좋은 모양이다. 여권에서는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을 다 합쳐도 못 이기는 복장(福將)”이란 말도 나왔다.
재계도 꼼짝 못한다. ‘황제 경영’이란 비판을 받는 대기업 총수도 대통령이 소집하자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왔다. 청와대 회동 이후 각 그룹은 부랴부랴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한국에서 정치와 경제의 역학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언론환경도 좋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방송을 비롯해 많은 언론매체와 관련 단체가 집권세력의 우군이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 과거와 달리 상당수 언론인이 나름대로의 신념과 목적의식으로 무장해 권력을 위한 ‘자발적 부역’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이 껄끄럽게 느끼는 몇 개 신문은 여당과 행정부, 친여(親與) 단체의 집요한 파상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지도자의 운이 좋으니 나라의 운도 피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좀 달라 보인다. 국정의 두 축인 안보와 경제에 모두 이상징후가 엿보인다.
노 대통령은 “경제는 잘 관리하고 있어 내가 있는 동안은 문제 없으니 안심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열심히 보고 있다는 경제지표는 비상이 걸린 지 오래다.
그나마 수출 하나로 근근이 버티지만 투자와 소비는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투자부진은 내일의 경제도 어두울 것임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다. 서민층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의 고통은 ‘높은 분’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침체라면 그래도 미래를 보고 견딜 만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장경제는 재산권의 확립과 법치주의, 이윤 동기 인정과 기업가 정신을 전제로 한다. 이런 기본이 위협받는 사회에서 경제발전은 어렵다. 현실 사회주의의 처참한 실패 이후 더 분명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이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이고 진보는 더불어 살자는 것”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 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주장할 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운 좋은 대통령’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국정을 책임지는 동안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점이다. 고매한 이상을 갖고 현란한 말을 하더라도 안보가 흔들리고 경제의 활력이 추락한다면 책임을 면키 어렵다. 대통령의 운만큼 한국의 국운도 상승기류를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권순활 경제부차장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