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가 안 좋은가?”
외교통상부 신청사(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가 최근 풍수지리 논란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재외공관 공금 유용 폭로 △외교부 간부의 대통령 폄훼 발언 파문 △외교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간 갈등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데 따른 분석이다.
외교부 내에선 “대화와 협상 같은 외교부의 유연한 업무에 걸맞지 않게 터의 기운이 너무 세다”는 말이 많다. 신청사 바로 옆 공원은 조선시대 때 사헌부(司憲府)가 있던 자리. 사헌부는 관리의 부정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기관으로 지금의 감사원과 비슷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교부 신청사 터에 ‘경찰기동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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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것은 터가 그래서 그런지 정부 내 힘 센 기관들이 신청사를 함께 사용하는 일이 잦다는 것. 외교부가 신청사로 옮겨온 2002년 12월 말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8층 건물의 4∼6층을 사용했다. 지난해 2월 말부터는 대통령직인수위가 나간 자리에 대통령민정수석실(6층)과 역시 감찰 업무 담당의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실(5층)이 들어왔다. 외교부 입장에선 ‘호랑이’가 나가자 ‘표범들’이 들이닥친 셈이었다고 직원들은 말한다.
요즘엔 건물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대형 말(馬) 그림이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가로 약 12m, 세로 약 2.5m인 이 그림엔 달리거나 앞발을 든 20마리의 말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제목도 ‘도약(jump)’. 그런데 외교부 고위 간부들조차도 “각종 대형 사고로 ‘혼비백산’했던 외교부를 연상시켜 떨떠름하다”고 말한다. 5, 6마리의 말이 앞발을 쳐든 모습이 뭔가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한 당국자는 최근 비공식 기자간담회에서 날카로운 질문 공세가 한꺼번에 쏟아지자 “로비의 그림처럼 사람을 혼비백산하게 만드시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풍수지리설을 일축하는 외교관도 적지 않다. 10년 차의 한 외교관은 “신청사와 세종문화회관 사이는 조선시대에 통역과 번역을 담당했던 사역원(司譯院) 터였던 만큼 외교부가 제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며 “불운을 떨쳐내는 것은 ‘터’가 아니라 ‘사람’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