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인생 역정을 다룬 ‘허삼관 매혈기’. 주인공이 피를 팔 때마다 천장에서 빨간 색 등이 하나씩 무대로 내려온다. 사진제공 극단 미추
“이보게 삼관이 빨리 와. 어서 물을 마시게. 물을 많이 마셔야 몸속의 피가 많이 늘어난다네.”
가진 것이라고는 몸속의 피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허삼관. 그는 장가들기 위해, 가족들에게 국수 한 그릇 먹이기 위해, 병원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판다. 피를 팔 때마다 ‘똑! 똑!’하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빨간색 등이 하나씩 천장에서 무대로 내려온다. 연극이 끝날 즈음에는 긴 줄에 매달린 30여개의 빨간색 등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극단 미추의 살림집이자 연극학교, 주말극장이 자리 잡고 있는 경기 양주시 백석읍의 미추산방. 요즘 이곳에선 4일부터 7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허삼관 매혈기’(연출 강대홍)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다. 수십명의 단원이 이곳에서 함께 숙식하며 연극 활동을 해온 데다 주인공뿐 아니라 간호사, 홍위병들까지 모두 극단 미추의 관록 있는 배우들이 맡아 여유 있는 앙상블이 느껴졌다.
특히 천덕꾸러기 큰아들 ‘허일락’ 역의 송태영씨는 2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역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해냈다. 여주인공인 ‘허옥란’(허삼관의 부인) 역을 맡은 서이숙씨는 개막 보름여를 앞두고 사고로 어깨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병원치료를 마치는 대로 공연 첫날부터 무대에 서는 투혼을 보여주기로 했다.
자신의 피를 팔아 살아가는 아버지 허삼관의 인생역정을 그린 ‘허삼관 매혈기’는 1996년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발표한 소설이 원작이다. 문화대혁명과 같은 굴곡진 중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연극에서는 낙천적 유머가 넘친다. 지난해 6월 초연돼 제4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기상(서이숙) 등을 받는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연출가 강대홍씨는 “우리에게도 80년대까지 ‘매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장기(臟器)판매도 횡행했다”며 “허삼관의 삶은 문화혁명기 중국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아버지들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화∼금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3시 6시. 2만, 3만원. 02-747-5161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