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불쑥 “아빠, 저 3학년 되면 반장 선거에 나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평소 내성적인 아이가 무슨 일일까’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이유를 물었다.
“반장이 되면 떠드는 아이들 이름을 적을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뭔가 소신 있는 대답을 기대했던 우리 부부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얼른 표정관리를 하며 다시 물었다. “그래, 반장 선거에 나가면 뽑힐 자신은 있니?” 그러자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저 우리 반에서 인기 많아요”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이름을 적어 혼내줄 수 있는 ‘작은 권력’이 부러운 터에 마침 인기도 있으니 그 자리에 도전해보겠다는 우리 아이….
흔히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자리에 올라 ‘사람이 된’ 경우보다 그 자리를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심지어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 더 많이 본다.
오늘도 수많은 ‘자리’가 뽑혀진다. 학교에서는 반장과 학생회장을 뽑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방의원과 단체장을 뽑고, 총선과 대선 때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다. 하지만 믿고 자리를 맡겼던 사람에게 곧 실망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자리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가 가져다주는 권력과 편안함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오늘은 큰 아이에게 ‘자리’는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진지하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 반장의 직분, 당선에 따른 책임감을 큰 아이가 잘 이해한 후에도 반장 자리를 여전히 탐(?)한다면 그땐 마음으로나마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작정이다.
임중수 회사원·서울 관악구 봉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