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현수막으로 뒤덮인 서울 종로구 대학로 문예진흥원 마로니에 미술관.-전승훈기자
‘대리운전 1588-○○○○’ ‘불법주차단속 CC TV작동 중’ ‘○○○ ○○ 마스카라’ ‘경축! 시각장애인 최초 ○○○○ 당선’.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내에 있는 문예진흥원 마로니에 미술관은 요즘 불법 현수막들로 온통 뒤덮여 있다. 마로니에 나무와 함께 대학로를 상징해온 붉은 벽돌 건물은 마치 ‘무당집’처럼 빨강 노랑 파랑 등 온갖 플래카드에 둘러싸여 어수선해 보인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자못 ‘미술관의 변신 이유’가 궁금한 표정이다.
사실 이 현수막들은 9일까지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열리는 ‘한 도시 이야기 9404’ 프로젝트를 기념해 만든 설치작가 최정화씨의 소재다. 그는 종로구청이 압수한 불법현수막 중 300여개를 활용해 설치미술작품을 만들었다. ‘한 도시…’는 1994년에 이어 10년 만에 열리는 행사로 서울 곳곳의 풍경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아내는 프로젝트다. ‘불법 현수막’ 설치작품도 서울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 작품을 본 시민들은 “불법현수막을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걸어 오히려 홍보하는 것 아니냐?” “저것도 예술인가?” “뭔가 싸구려 티가 나는 서울의 모습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가 최씨는 “불법현수막에는 서울사람들의 생활모습과 욕망이 가장 비주얼하게 담겨 있다”며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불법현수막들을 모아보았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청 관내에서 하루에 압수되는 불법현수막은 80∼100여개. 지정된 장소에 걸지 않은 현수막은 모두 불법 현수막이다. 대리운전 현수막의 경우 밤늦게 술집이 밀집된 거리에 설치됐다가, 아침이 오기 전에 다시 떼어가기 때문에 구청측은 한밤중에 기습단속에 나서기도 한다. 종로구청 도시계획과 현수막 담당 김대명씨는 “압수된 불법 현수막은 사회복지단체로 보내져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만드는 데 쓰인다”며 “전시를 마치면 이번에 사용된 불법현수막들도 그쪽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