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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이태주/‘짝퉁 천국’서 길을 잃다

입력 | 2004-06-04 18:34:00


처음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은 두 번 놀란다. 거리에서 외제 자동차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에 놀란다. 이태원이나 명동, 동대문시장을 찾아 쇼핑을 하면서는 아주 값싸고 진품보다 더 명품 같은 고품질의 복제품 ‘짝퉁’들이 넘쳐나는 것에 놀란다. 아예 짝퉁을 대량 구매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있다.

진짜 같은 ‘짝퉁’ 명품을 만들어내는 한국의 고급 복제기술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은 과거 홍콩의 명성을 따돌리고 ‘짝퉁 세계화’의 중심이 되었다. 의류, 가방, 양주, 보석, 시계, 전기제품, 그림 그리고 먹을거리까지 우리 주변은 짝퉁 천지다. 가히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짝퉁과 더불어 살고 있는 셈이다.

대학생 100여명에게 물어보니 짝퉁을 한번도 안 써봤다는 학생은 전무했다. 오히려 “나는 짝퉁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 가히 짝퉁은 요즘 경제생활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짝퉁 문화는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의 욕구가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합작품이다. 옹호할 의도는 없지만 짝퉁은 자본과 브랜드가 없는 영세기업이 초국적 기업에 대응하는 생계전략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에게도 짝퉁은 고가 명품을 대체해 ‘품격도 주고 대리만족도 주는’ 실용적 선택이다. 진위를 따질 필요조차 없는 상품 광고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짝퉁을 통해서라도 날조된 기호와 이미지를 함께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유행이나 소비문화는 상류층의 차별화와 중산층의 모방이라는 이중의 엔진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떻게든지 남들과 구별짓기를 시도하고자 하는 ‘명품족’들과 이들을 추종하고 모방하는 ‘짝퉁족’들이 소비행위의 유행과 열풍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광고매체와 미디어는 이러한 유행을 무슨 신드롬이라 이름짓고 초등학생들까지 명품 유행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자극한다. 짝퉁 현상은 명품에 중독되는 ‘물신(物神)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다.

문제는 최근 짝퉁 상품들이 마약 밀매나 국제 범죄조직처럼 생산자, 수출입업자, 판매업자가 긴밀히 연계돼 국경을 넘나들면서 조직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짝퉁의 생산과 유통체계, 소비문화도 급속히 세계화하고 있다. 이처럼 짝퉁이라는 문화현상은 전 지구적인 것이고, 특히 개발도상국의 모든 대도시 소비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고위험의 마약거래와 마찬가지로 짝퉁의 생산과 유통은 법적 제재라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높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고 고용 효과도 크기 때문에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짝퉁 경제는 혁신하는 기업의 성장과 건전한 경쟁 및 연구개발을 저해하는 독약과 같다. 범람하는 짝퉁 상품은 초국적 기업뿐 아니라 결국 유망한 자국 기업도 죽인다. 이제 한국사회는 대량 고급 복제기술에 의한 모방의 시대를 넘어 사회 구석구석에 창조적 문화혁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모방과 흉내내기는 일종의 식민지 근성이다. 이제는 차이와 다양성을 만드는 창조 정신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이고 무한 자원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나는 짝퉁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창조적 다양성을 말살하는 국제 범죄에 동조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외형과 성장, 모방과 흉내내기에 급급한 경제와 문화의 근본을 바꿀 때다.

이태주 한성대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