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왕들이 거처했던 창덕궁(昌德宮).
경복궁이나 덕수궁의 그늘에 가려 서울에 살면서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5월부터 창덕궁에 딸린 비원의 일부 공간이 28년 만에 공개되면서 창덕궁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이 비경의 공개는 11월까지 한시적이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쯤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궁궐 문(돈화문)을 들어서서 왕의 집무실(인정전)과 정책토론실(선정전), 회의실(희정당)을 거쳐 안으로 더 들어가자.
왕비의 침실(대조전) 안쪽에 왕들이 쉬던 숲이 있다. ‘금지된 곳(禁苑·금원)’이라고도, ‘비밀의 공간(秘苑·비원)’이라고도 불린 창덕궁 후원(後苑)이다.
후원에는 모두 6개의 연못과 정자 25동이 있다. 조선의 미를 집약해 놓은 듯 하나같이 단아한 모습이 주변의 자연과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대조전을 넘어가면 바로 부용지가 나온다. 네모난 연못을 연잎이 덮고 있고, 연못 가운데 섬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부용지 다음이 주합루. 주합루부터 옥류천까지가 1976년 이후 올해 처음 공개된 곳이다.
주합루를 넘어 차단기를 올리고 걸어가면 ‘서울 도심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나’ 할 정도로 울창한 숲과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떠들던 관람객들도 조용한 분위기에 눌려 말을 잃는다. 새소리를 들으며 반도지와 관람정으로 가는 길은 더 없이 훌륭한 산책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린다.
관람정 앞 연지에는 연못 위에 배를 띄운 것 같다는 정자 ‘관람정’과 언덕 위에서 연못을 감상할 수 있는 ‘승재정’이 있다.
정조가 통치철학을 써 정자 안에 건 존덕정과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폄우사를 지나면 옥류천이 나온다. 옥류천을 둘러싼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등은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과 비원을 문화유산해설사와 둘러보는 것은 자녀들에겐 더 없이 좋은 역사공부다. 옥류천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특별 관람은 2시간반 정도 걸린다. 11월 30일까지 1일 3회. 홈페이지(www.cdg.go.kr)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부용지, 주합루, 애련지, 연경당을 볼 수 있는 일반관람은 예약이 필요 없다. 10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15분, 45분에 입장할 수 있다.
비원은 서울지하철 1, 3, 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린다.
비원 구경을 마치고 종로구 인사동과 대학로, 북촌마을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떠났다가 갑자기 현대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느껴질 것이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