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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입니다"

입력 | 2004-06-06 17:29:00

안데르센 수상작가인 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선생님, 이야기하고 싶어요'는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작가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는 간결한 언어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사진제공 동연어린이


◇선생님, 이야기하고 싶어요/하이타니 겐지로 글 하야가와 슈헤이 그림 오근영 옮김/46쪽 8000원 동연어린이(6∼7세)

◇내가 만난 아이들/하이타니 겐지로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232쪽 9800원 양철북(학부모용)

안데르센상 수상작가 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책 두 권이 그의 방한(5월 21∼23일)을 전후로 나왔다.

방한 직전 나온 ‘내가 만난 아이들’이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났던 아이들의 세계를 소개하는 수필이라면 이번에 나온 ‘선생님, 이야기하고 싶어요’는 그 중의 한 이야기에 그림을 곁들인 것 같은 그림동화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선생님…’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한다’ 또는 ‘어린이에게 배운다’는 작가의 교육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렇다고 그림책으로 포장한 딱딱한 철학책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의 눈으로, 시처럼 간결한 언어로, 교사와 자폐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유치원생 이츠코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어떤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이 나고 목이 마르기 시작하고 눈물이 나온다. 자폐아가 아니어도 그럴 수 있지 않은가!

초보선생님 이쿠코는 일이 서툴러 허둥대기만 하면서 사고를 친다. 아이의 눈에도 이쿠코 선생님은 ‘길바닥에 떨어져 부르르 떨고 있는 두부봉지’ 같다. 둘 사이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아이는 선생님이 힘들어하는 게 안타깝다. 결국 아이는 선생님께 손을 내민다. 말문이 트이고 선생님은 용기를 얻는다.

‘내가 만난…’은 하이타니가 어떻게 그토록 생생하게 아이들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암울했던 어린 시절 공장에서 겪은 노동자들, 1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가르친 아이들, 교직을 그만두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만난 오키나와 사람들, 문예지 ‘기린’을 통해 알게 된 어린 시인들…. 모두 하이타니에게 인간의 낙천성과 상냥함, 생명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주인공들이다.

하이타니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낙천성을 전한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다 덤프트럭에 치여 오른쪽 대퇴부를 절단하고 의족을 단 사토루의 시 ‘나의 다리’가 있다.

‘나는 병원에서/만날 울기만 했다…그리고 한참 있다가 뼈가 자랐다/나는 밤에/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뼈야, 너는 나한테 다리가 있는 줄 알고 자라 주었구나.’

문예지 ‘기린’을 배달하던 교사 하이타니는 잡지 속 아이들의 시 중에 방귀를 주제로 한 것이 있다는 이유로 나이 지긋한 여교사로부터 구독중지를 당한다. 선생님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3학년 료코는 다음날 하이타니에게 시 ‘방귀’를 내민다.

‘내가 어른이라면/간호사가 되어/방귀만 뀌겠습니다…하느님이 화를 낼 때도/뿡뿡 방귀를 뀌어/얼렁뚱땅 넘어가겠습니다.’ 아이들의 상냥함을 가르쳐주는 시들도 있다. 부모에게 버린 받은 여섯 살짜리 다카시. ‘학교 갔다 오니까/아무도 없었다…집 안에 짐이 하나도 없다/나만 남겨 두고 이사를 가 버렸다.’ 그러나 다카시는 자신의 점심 값 100엔으로 빵을 사지 않고 어린 동생에게 줄 장난감을 산다. 배가 고팠지만 나중에 아기가 돌아오면 주기 위해서.

작가는 “그 절망 속에서도 상냥함을 잃지 않는 이 아름다운 사람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고 고백한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