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으로 갈라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5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6일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시라크 대통령을 만났다.
이번 회담은 이라크전쟁 이후 사실상 첫 양국 정상회담. 두 정상은 지난해 6월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와 9월의 유엔총회에서도 만나기는 했다. 그러나 다자회의 참석을 계기로 가진 형식적 만남이었다. 이번처럼 한 정상이 상대방 나라를 방문해 갖는 정상회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게 유럽 언론의 평가다. 이라크전쟁으로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을 하루아침에 메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 정상 개인의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았다.
▽회담의 앞과 뒤=시라크 대통령은 이날 부시 대통령과 1시간 회담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완전히 주권을 이양한다면 (미국과 영국이 제출한) 이라크 결의안이 며칠 내로 통과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사코 결의안에 반대해 온 시라크 대통령이 ‘며칠 내’ 운운한 것은 부시를 의식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완전히 주권을 이양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단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가진 만찬에서는 “미국의 새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부시 대통령을 수행한 관리가 전했다. 이 때문에 시라크 대통령이 공식 기자회견 때보다 비공식 만찬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한발 더 양보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과 관계개선을 안할 수 없지만 하루아침에 숙이고 들어갔다간 정치적 입지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시라크 대통령의 딜레마다. ‘만장일치’ 운운 발언에 프랑스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D데이’ 논쟁=개인적으로 소원한 관계 때문인지 회담 전후 어색한 장면이 많았다. 먼저 부시 대통령이 프랑스보다 이탈리아를 먼저 방문한 게 프랑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국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시의 이라크전쟁을 적극 지지해 왔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 직전 “‘D데이(노르망디 상륙작전일)’의 교훈은 자유를 지키려면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옹호하는 비유법이자 이라크전쟁을 반대한 프랑스를 겨냥한 언사였다.
시라크 대통령도 이에 질세라 공동 기자회견 장소에서 “역사는 반복되지도 않고, 비교할 수도 없다”고 받아넘겼다. 여기에다 회담 직후 들려온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서거 소식마저 모처럼의 대좌를 초상집 분위기로 바꿔버렸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