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집’에 실린 분산도(墳山圖). 조상 숭배를 중시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조상묘의 위치를 그린 지도를 목판으로 만들어 후손들이 그 위치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했다.-사진제공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은 말 그대로 글씨나 그림을 새긴 나무판이다. 목판이라고 하면 보통 팔만대장경판을 떠올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대장경판은 책판에 속한다. 책판이란 책을 찍어 내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목판의 한 종류일 뿐이다.
한적(漢籍)의 책표지를 찍는 능화판(菱花板), 시나 편지를 쓸 종이에 아름다운 그림을 찍어 내는 시전지판(詩箋紙板), 좋은 글귀를 찍어 내기 위한 서판(書板),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판, 여자들이 머리를 묶는 댕기의 문양을 찍는 댕기판, 이불의 문양을 찍던 이불보판, 떡에 문양을 찍던 떡살판 외에 지도판, 현판 등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이 중 지도판 가운데서도 흥미 있는 것이 무덤의 위치를 새긴 분산도판(墳山圖板)이다. 아주 신씨(鵝洲 申氏) 집안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자료 중 조선 중기의 선비인 회당 신원록(悔堂 申元祿·1516∼1576)의 분산도판이 있다. 그리고 이 분산도판으로 찍은 분산도, 일명 ‘묘도(墓圖)’는 그의 문집인 ‘회당집(悔堂集)’에 실려 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해서 열한 살 때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팔공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어 8년간이나 간호했고, 뒷날 장수(長水) 삼가(三嘉) 청도(淸道) 등지에서 교육담당관리인 학관(學官)이 되어 연로한 부모를 봉양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다가 주세붕(周世鵬)이 백운동 서원을 설립하자 찾아가서 가르침을 구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묘도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을 그린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묘도는 명당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명당은 장풍득수(藏風得水)라 하여 바람이 모이고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야 하며, 뒤에는 주산(主山)이라 하여 높은 산이 있고 앞에는 안산(案山)이라 하여 낮은 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지형을 그려 놓고 보면 마치 여성의 성기 모양과 흡사하다. 음택(陰宅·묘지) 명당의 위치는 음핵 자리가 된다.
그의 문집인 ‘회당집’ 끝부분에 들어 있는 묘도에도 이런 요소가 갖춰져 있다. 문집을 묶은 후손들은 “많은 세월이 흘러 조상의 무덤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을 때 문집 뒷부분의 묘도를 베껴서 묘소를 찾으라”고 이 묘도를 싣게 된 연유를 밝혔다. 이 묘도가 가리키는 곳은 현재 경북 의성군 비안면 고도산이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한국사
한국국학진흥원과 동아일보사가 함께 ‘유교 10만 대장경’ 수집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각 문중에서 보관 중인 목판을 위탁 받아 현대적 보존시설을 갖춘 국학진흥원 내 장판각(경북 안동시 도산면)에 정리 보관합니다. 054-851-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