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씨는 “내 글의 목표는 읽고난 후 독자의 머리속에 글이 영상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며 “영상매체의 스크립터같은 자세로 글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전방위 비평가인 진중권씨가 자신의 전공인 미학을 주제로 신문에 글을 연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박경모기자
《베스트셀러인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 진중권씨(41·중앙대 겸임교수)가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미학 세계’의 안내자로 나선다. 15일부터 매주 화요일 다양한 놀이를 통해 아름다움의 원리를 풀어내는 ‘놀이와 예술’ 시리즈를 집필하는 것. 그의 책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 대중화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씨를 만나 왜 ‘놀이와 예술’인지에 대해 물어봤다.》
●주사위놀이에 깃든 세계관
“미디어의 중심이 논리적인 문자매체에서 감각적인 영상매체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사 역시 ‘진리’에서 ‘재미’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놀이’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요구에도 맞죠. 동시에 놀이에는 수많은 예술적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서양 미학의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놀이’를 통해 쉽고 즐겁게 전달할 겁니다.”
예술창작관은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주사위놀이에는 ‘필연’이 지배하는 근대적 세계관과 ‘우연’이 지배하는 현대적 세계관이 녹아 있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맥락에는 세계질서가 필연의 법칙에 지배 받는다는 생각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러나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되면서 우연의 법칙이 주목받게 됐죠. 세계관의 변화와 함께 예술창작에도 점차 우연성이 도입됐어요.”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되던 시기 다다이즘 시인들은 무작위로 뽑은 단어로 시를 썼고, 존 케이지는 무작위로 추출한 동기(動機)를 이어 작곡했다. 마르셀 뒤샹은 공중에서 실을 떨어뜨려 떨어진 형태 그대로를 작품으로 발표했고, 잭슨 폴록은 물감을 흩뿌려 작품을 만들었다.
●테크노아트 시대를 예고하는 놀이미학
그가 놀이와 예술의 상관관계에 주목하게 된 것은 최근 폴란드 여행 때 방문한 ‘조커(joker)’라는 이름의 한 카페에서였다고 한다.
“카페 안에 서양카드의 역대 조커 그림들을 죽 전시해 놓았더군요. 요즘은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 조커처럼 익살맞은 광대의 얼굴이지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미친 배우의 모습이었어요. 예전엔 미친 사람이 신성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믿었던 거죠. 이는 광대로 상징되는 예술이 영감과 광기의 산물이라는 오랜 전통과 연결됩니다.”
진씨는 예술의 내용은 그 형식에 지배받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사유 속에서 미디어의 발달과 예술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진보적 인터넷논객으로 유명한 그에게는 ‘인터넷’도 하나의 놀이였다. 그러나 최근 그는 이 놀이에서 “손을 뗐다”고 했다.
“다양한 의견의 장이었던 인터넷공간이 의견이 다른 사람을 집단공격하고 소수의견을 위협해 모든 목소리를 동질화시키려는 파시즘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어 회의가 들었어요. 당분간 인터넷을 멀리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예술이 미디어발전과 결합한 ‘테크노예술’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보통사람들이 디카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사진을 보세요. 과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포토몽타주’라고 이름 붙였던 전위 예술적 행동이 이제는 일상화되고 있어요. 미래는 과학자가 예술가가 되고 예술가가 과학자가 되는 시대가 될 겁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