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을 임차하거나 건물을 매매할 때 한국인은 ‘간 크게’ 행동한다. 달랑 매매계약서 한 장만 믿고 거액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권리이전도 안된 상태에서 중도금을 낸다. 이러다 보니 이중거래 사기나 계약의 중도파기 등에 따른 피해 사례가 종종 생긴다.
현행 법률상 이런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중개업자의 고의나 과실이 분명한 경우에는 5000만원 한도 안에서 보상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당사자 책임이다.
부동산 거래에서의 비합리적인 관행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에스크로 서비스(escrow service)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에스크로란 부동산이나 금전, 권리증서 등을 사고팔거나 대여할 때 금융기관 등 믿을 수 있는 제3자(escrow agent)가 매수대금을 맡았다가 계약 완료 시점에 매도인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매매대금 예치제도다.
미국의 경우 부동산 거래 대부분이 에스크로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주택 매매시 에스크로 사업자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매매 과정이 계약서대로 이뤄지도록 관리해주며,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보관했다가 에스크로 종결과 함께 매도인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위조나 사기, 계약서 분실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으며 계약이 중도에 파기될 때도 에스크로 사업자가 계약 내용에 의해 보관된 돈을 분배하므로 분쟁의 소지가 없어진다.
우리나라도 부동산중개업법에 에스크로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돼 있으며 최근엔 일부 은행권을 중심으로 서비스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에스크로 사업자의 자격기준 등 제도의 자리매김을 위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없다. 정부는 에스크로 서비스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모델을 제시하고 사업자 자격기준을 마련하는 등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종인 한국소비자보호원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