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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세이]정윤수/축구협회장, 젊은 목소리 들어야

입력 | 2004-06-07 18:55:00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대한축구협회 얘기다. 미궁에 빠진 대표팀 감독 선정 문제와 관련한 뜨거운 의견 표출에서부터 기술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자,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등의 다양한 목소리가 축구계 안팎을 달구고 있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토론과 논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7월 중순의 아시안컵 대회와 8월 중순의 올림픽, 그리고 그 와중에 다소 관심이 시들해질 프로축구에 대한 우려까지 겹치면 협회에 대한 축구계 안팎의 공격적 관심은 당분간 줄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 말로 정몽준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내년 초에 협회는 차기 회장을 선출한다. 현재로는 정 회장의 입지가 워낙 탄탄해 ‘이변’을 예측하기 어렵다. 김운용씨의 몰락 이후 국제 스포츠계에 그만한 입지를 가진 이도 없으며 마땅한 ‘대항마’도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의 ‘축축모’(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정 회장 반대운동을 벌였다) 파동 때처럼 단단한 바위에 ‘계란 얼룩’이 번져 흉해질지도 모른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프로리그는 스포츠산업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여전히 구단의 ‘홍보’ 차원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으며 국가대표팀 역시 위기 때마다 ‘감독 경질’이라는 극약처방으로 모면해 온 탓에 의사결정의 불투명성만 두드러진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닥쳐오면 진흙탕 싸움이 될지 모른다. 선거는 대체로 편 가르기 싸움으로 치닫기 마련인데 지금처럼 협회 상층부와 축구계 밑바닥 정서가 이질적인 상황에서는 자칫 사분오열의 혼란만 닥칠지 모른다. 물론 축구 발전과 협회의 비전을 위한 생산적 논쟁도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선거란 기본적으로 ‘선택과 옹호’의 과정이며 이는 실제적으로는 어떻게든 ‘줄을 설 수밖에’ 없는 난처한 상황을 요구한다. 이 경우 축구인들이 받게 될 심리적 불안과 자존심의 상처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정 회장은 다양한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기탄없는 목소리’를 찾아 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나는 정 회장에게 협회의 젊은 직원들과 대화하기를 권한다. 젊은 직원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의 온도와 협회에 대한 사랑의 순도는 축구계 안팎에서 두루 호평을 받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선거에 의해 거취가 좌우되지 않는다. 회장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협회를 평생직장으로 여겨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는 젊은 직원들의 목소리는 정 회장에게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선물할 것이다. 회장으로서는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밑바닥 정서’를 잘 알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축구의 원대한 ‘로드맵’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축구인들이 정 회장에게 내놓고 하지 못한 충언을 듣게 될 것이다. 이는 협회 바깥의 비판적 목소리와는 또 다른 온도와 질감으로 정 회장의 가슴을 적실 것이라고 본다.

보고서 양식에 요약된 몇 줄의 습관적 문장이 아니라 축구계 안팎의 고심과 열정, 사랑과 헌신으로 무장한 젊은 직원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그것은 솔직히 정 회장의 ‘정치적 행보’에도 약이 되는 일일 것이다.

정윤수 축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