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재현한 영화 ‘블러디 선데이’. 사진제공 백두대간
18일 개봉예정인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는 1972년 영국령 북아일랜드 데리 시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971년 경찰이 재판 없이 체포와 억류를 할 수 있다는 법령이 통과되자 시민들은 ‘불법 억류 반대’를 주장하는 행진에 나섰다. 그러자 영국 공수부대원들은 행진에 참가한 시민을 향해 무차별 발포했고 13명의 희생자를 냈다. 우리에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1972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데리 시민들은 영국 정부를 상대로 시민권을 보장해달라며 평화행진을 벌인다. 데리 시민권협의회 대표인 아이반 쿠퍼는 IRA(아일랜드공화군)의 무력 대응에 반대하며 평화행진을 주도한다. 일부 청년들이 대열에서 이탈해 돌을 던지면서 분위기는 술렁인다. 폭도를 진압한다는 빌미로 공수부대가 투입된다. 데리 시는 피와 눈물의 바다로 변한다.
주로 TV의 논픽션드라마를 찍어온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역사의 현장을 실제로 담은 다큐멘터리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극영화를 만들었다.
우선 카메라를 들이대는 방식부터 그렇다. 카메라는 시위대와 진압부대의 내부를 비집고 더 깊이 들어간다. 카메라가 종국에 포착해 내는 진실은 결국 한 가지. 끔찍한 역사적 사건의 밑바닥에는 일사불란한 군사작전이나 평화적 시위의 동기가 아니라, 오직 생존욕구와 살인본능이 꿈틀거리는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들고 찍기 방식은 현장감을 높이고, 아주 짧게 끊은 쇼트들을 누더기처럼 이어붙이는 편집방식은 진실을 거칠게 증언하는 다큐멘터리의 역동성을 뽑아낸다.
캐스팅은 리얼리티와의 경계 자체를 녹여버렸다. 영화 속 행진에는 데리 시민 1만 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병원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은 실제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었다.
이 영화는 민중의 항쟁과 희생을 큰 그림으로 보여주기를 원치 않는다. 대신 일촉즉발 혼란의 와중에 아주 사적인 살육과 죽음이 벌어지는 신경질적인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며, 피보다 훨씬 짙은 공포가 있음을 가르친다. 할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화한 죽음이 난무하는 지금, 이름모를 인물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곱씹듯 체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이 작품에 그랑프리인 황금곰상을 안겨줬다.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