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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지성+미+끼+α… ‘新메이퀸’ 열풍

입력 | 2004-06-10 16:23:00



메이퀸이 이화여대의 상징인 시절이 있었다. 1978년 여성의 상품화를 이유로 70여년 만에 선발대회가 폐지되긴 했지만 메이퀸은 한때 모든 대학생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요즘, 대학가 여대생들 사이에 ‘신(新)메이퀸 열풍’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학의 얼굴’ 홍보도우미를 뽑는 선발대회에서 여대생들은 지성과 미모, 끼를 내세워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대학으로서도 홍보요원이나 학교모델을 손쉽게 발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메이퀸 때와 비슷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찌감치 ‘튀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의 열정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 끼의 경연장

3일 덕성여대 대강의동에서 열린 홍보도우미 ‘빛내미’ 선발대회.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예선에 합격한 16명의 학생이 저마다의 장기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려 애쓰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카드마술을 준비한 한혜영씨(경상학부 1학년)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심사위원과 객석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어 얌전한 치마정장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김은희씨(컴퓨터과학부 1학년)는 댄스음악에 맞춰 막춤에 가까운 몸놀림을 시작했다. ‘이 한 몸 바쳐 학교홍보 하겠다’는 각오만큼이나 열정적인 춤사위에 괴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지원자 중 최고 학년인 정경아씨(심리학과 3학년)는 자신의 장점과 도우미로서의 비전을 조목조목 분석해 소개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이 밖에도 애교심을 열정적으로 호소하는 스피치, 좌중을 사로잡는 ‘절세미인’의 살인미소 등이 선보였다.

덕성여대 홍보도우미 선발은 올해로 10번째. 그러나 공개 무대심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원대상도 1학년에서 2, 3학년까지로 넓혔다. 도우미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보다 다양한 학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는 인원도 5명에서 10명으로 늘렸다.

선발 절차는 서류전형과 면접, 무대심사 등의 순. 하이라이트는 무대심사. 지원자들은 서류전형이나 면접 과정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20대 초 특유의 끼를 다양하게 표출한다. 여기서 뽑힌 홍보도우미 10명은 재학 기간에 신문광고 등에 학교모델로 등장하게 되고 대내외 홍보활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 또 하나의 대학축제

덕성여대뿐 아니라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동덕여대 등 대부분의 여자대학이 홍보도우미를 뽑는다. 명칭이나 선발인원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평균 10 대 1, 일부 학교는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발대회는 학교의 축제가 되기도 한다. 지난 달 중순, 6기 ‘바로미’ 10명을 뽑은 서울여대가 대표적. 학교동문인 MC 박정수씨가 사회를 보고 초대가수, 학교 응원단, 댄스 동아리 등의 무대가 이어졌다. 선발대회를 보러온 학생들이 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강당은 초만원을 이룬다.

그러다 보니 지원자의 경쟁력도 해마다 ‘업그레이드’ 된다. 같은 마술이라도 학교를 소재로 한 창의적인 접근이라야 그나마 눈길을 끈다. 웬만한 복장으로는 깊은 인상을 줄 수 없다. 올해는 비행기 승무원복, 전통한복, 이브닝드레스 등 튀는 옷차림이 많아졌다. 한국어 프레젠테이션이 경쟁력이 없어진 지는 오래. 참가자들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 일부 성형수술하기도

대부분의 학교는 애교심과 적극성, 봉사정신 등을 선발기준으로 꼽는다. 그러나 선발된 학생들의 면면을 보면 미모도 결코 무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선발과정에서 무대심사는 기본이고 최종심사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하는 학교도 있다. 학교 모델로 쓰려면 ‘사진발’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

때문에 지원자들은 외모에도 상당한 투자를 한다. 선발대회 때에는 강남이나 신촌의 고급미용실에서 화장이나 머리를 하고 오는 것은 보통. 대회를 위해 성형수술을 했다는 학생도 있다. 여기에 자녀가 홍보도우미가 될 수 있도록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

서울여대 홍보실 이민재씨는 “학부모들이 이듬해 자녀의 도우미 선발을 돕기 위해 대회 현장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대회가 끝나면 학부모의 항의전화도 적지 않다. 한 대학의 홍보실 관계자는 “지난해 자신의 딸이 모델과 비슷하게 성형까지 했는데 떨어진 이유가 뭐냐며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었다”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러다보니 ‘미인대회’ ‘성의 상품화’라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덕성여대 오성준 홍보실장은 “홍보도우미는 기존의 근로 장학생제도를 확대발전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입시철의 행정도우미나 고교방문단, 대학박람회의 안내도우미 등 대학마다 수시로 운용하던 자원봉사 또는 근로장학생을 일원화해 관리하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 여성 리더를 꿈꾸며

대학마다 홍보도우미가 인기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 홍보도우미 활동은 최근 기업들이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봉사활동’ 항목에서 가점대상 활동이기 때문. 요즘 같은 취업난에 없어서는 안 될 ‘자격증’ 같은 것이다.

각 대학이 단순한 ‘미(美)의 사절단‘이라는 이미지를 뛰어넘기 위해 외국어, 예절, 리더십 등의 소양수업을 하는 것도 기업들에 호평을 받고 있다. 학교안내와 의전행사는 이미 수준급 이상이라고 소문이 났다. 고교생에서부터 정관계 인사, 외국 귀빈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찾는 다양한 방문객들을 유창한 말솜씨와 세련된 매너로 안내한다.

대외 노출이 잦은 탓에 스타 도우미가 탄생하기도 한다. 일부 대학 도우미들이 상업광고의 모델로 출연하거나 방송 아나운서나 리포터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숙명여대 앰배서더 4기 팀장 조정은씨(법학과 4학년)는 “화려한 모델을 꿈꾸거나 취업보장을 노리고 지원한다면 중도 하차하기 십상”이라고 충고한다. 잿밥에 눈독을 들이기엔 홍보도우미 업무가 고되다는 얘기.

이들은 대학 입시철이면 전국의 고등학교를 순회한다. 두달 동안 20∼30개의 학교를 도는 강행군이다. 또 매년 11월경 열리는 대학입시 박람회에서는 각 대학 홍보도우미들과 진검승부가 벌어진다. 홍보도우미들은 자신의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학교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성신여대 홍보실 고동숙씨는 “단순한 홍보모델을 뽑는다기보다는 미래의 여성리더가 될 인재가 뽑혔으면 하는 것이 학교측의 바람”이라며 “학교는 다재다능한 그들에게 좀 더 다양한 토대를 마련해 줄 뿐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는 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글=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