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선수촌 식당은 체중과 식욕 사이의 갈등을 느끼는 대표선수들에겐 좀 잔인한 곳이기도 하다.
2일 오후 2시, 서울의 기온은 섭씨 30도였다. 1시간 전만 해도 오전훈련을 마친 선수들로 북적대던 태릉선수촌 식당은 조용했다. 검게 탄 얼굴의 한 여자선수가 식당의 조리장 안으로 들어갔다. 1분 정도 지나자 그는 죽부인 크기의 비닐주머니에 얼음을 가득 담아 어깨에 메고는 밖으로 나갔다.
영양사 조성숙씨(45·여)가 그 선수를 슬쩍 쳐다봤다. “아마 하키선수일 거예요. 뙤약볕에서 훈련하려면 얼음이 꼭 필요하거든요.” 선수촌 경력 20년째인 조씨는 이제 선수들의 얼굴빛과 체형만 보고도 종목을 집어낼 수 있다.
조씨가 태릉선수촌 식당의 ‘24시’를 이야기했다.
식당에서 가장 괴로운 선수들은 누구일까. 태권도 유도 레슬링 복싱 역도 등 체중을 조절해야 하는 종목의 선수일 것 같지만 사실은 여자 체조선수들이 보기에 가장 애처롭단다.
대부분 10대 중반으로 한창 군것질을 밝힐 때지만 공중2회전 같은 고난도 기술을 위해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은 필수. 과일 한 쪽에 야채 조금 정도만 먹을 때도 있다. 선수들은 “먹고 싶다”고 하소연하지만 선수 방에서 숨겨 놓은 과자를 찾아내는 무서운 코치도 있다.
체급 종목 중에는 여자 레슬링 선수들이 체중을 엄격히 관리한다. 과일도 저울에 달아 500g씩 잘라 먹을 정도. 체급 종목에서는 88년 서울올림픽 때만 해도 며칠 사이에 10kg이나 빼는 선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계체중보다 2∼3kg를 넘지 않도록 평소에 관리한다.
선수촌 밖에서는 농구 야구 축구 등의 선수들이 스타지만 선수촌 식당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메달 유망종목이냐 아니냐로 선수의 ‘계급’이 결정된다.
이른바 유망 종목의 코치들은 식당에 특정 선수를 위한 특식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경험이 드문 육상에서 특식 요청이 들어온 적은 거의 없다.
잘 먹기로 따지면 역도 유도 레슬링의 중량급(重量級) 선수들이 최고다. 구기종목 선수들도 잘 먹는데 특히 몸과 몸이 맞부딪치는 아이스하키와 수구 선수들은 음식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보통 이런 선수들이 한 끼에 식판에 담아 먹는 음식을 열량으로 환산하면 일반 성인남자의 하루 섭취량(평균 2500Cal)과 맞먹는다.
그렇게 먹어대는데도 살이 안 찌는 구기 선수들을 보면 훈련이 얼마나 고된지 알 수 있다. 2개월 전 올림픽 예선전을 위해 들어온 남자 배구 선수들은 훈련에 지쳐서 아예 밥을 먹지 못하기도 했다.
현재 300여명의 선수가 훈련하는 선수촌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쌀은 1가마(80kg). 성인용 밥 한공기가 80g이라고 볼 때 일반인들이 먹는 수준과 비슷하다.
이는 영양과 칼로리를 감안해 밥 이외의 음식을 많이 준비하기 때문. 여름에 접어들면서 수박은 하루 40통, 음료수는 1.8L 페트병으로 200개, 아이스크림은 35만원어치가 하루 만에 없어진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