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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입력 | 2004-06-10 18:41:00


갓 쓴 원숭이(11)

“능묘 안에는 대군을 다 들일 수가 없어 죽은 뒤에 부릴 군사들의 진채를 따로 땅속에 마련한 것이겠지요. 또 예부터 진나라의 모든 적은 언제나 동쪽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시황제는 자신의 능묘로부터 동쪽으로 십리 떨어진 이곳을 토용(土俑)군단의 지하진지(地下陣地) 터로 정했을 것입니다.”

계포가 그렇게 대답하며 동의를 구하듯 범증을 돌아보았다. 병마용을 들여다보며 서로 맞춘 의견이 있는지 범증도 계포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항우가 다시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 입구는 왜 이리 허술하오? 저 농부가 잠시 두리번거리는 것으로 쉽게 찾아냈으니, 다같이 죽은 뒤를 위한 일이면서도 이곳이 여산 능묘에 비해 너무 허술하지 않소?”

“그것은 아마도 이곳 일을 맡아하던 진나라 사졸들에게 입구를 제대로 감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달포 전이라면 자영이 패공 유방에게 항복할 즈음 아닙니까? 그런데 저 농부의 말대로 그때까지도 토용들이 묻혀 있지 않았다면, 토용을 굽고 있는 일꾼들이나 그들을 부리는 진병(秦兵)들이나 모두 무슨 경황이 있었겠습니까? 상하 모두 눈치를 보아 달아나기 바쁘다 보니 일이 그렇게 허술하게 마무리 지어졌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땅굴 안에 묘구(墓丘) 도적들이 노릴 무슨 굉장한 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렇게 엄중하게 입구를 봉할 까닭도 없었던 듯합니다.”

이번에는 범증이 나서 그렇게 추측했다. 그러자 항우가 다시 그곳을 일러준 농부를 불러오게 했다.

“시황제나 호해의 짓거리로 보아 토용이 묻힌 곳은 이곳 한 군데뿐만이 아닐 것이다. 여기 말고 또 어디에 구덩이가 파이고 군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느냐?”

그러자 그 농부는 한동안 기억을 더듬더니 두어 군데를 더 가리켰다.

항우가 군사들을 시켜 그 농부가 가리킨 곳을 파보게 했다. 이번에는 전같이 쉽지 않았으나, 그래도 땅굴의 입구를 몇 개 더 찾아낼 수는 있었다. 그리로 들어가 보니 모두 처음 보다는 규모가 작거나 만들다 만듯한 땅굴 들이었다.

“저것들을 모두 파내려 하십니까? 파내봤자 허술하게 구운 진흙덩이에 지나지 않을 터인데 무엇에 쓰시려는지요?”

항우가 많은 군사를 풀어 모든 땅굴 입구를 크게 파헤치도록 하는 걸 보고 계포가 물었다.

“파내려는 것이 아니라 부수고 태워버리려는 것이오. 그러함으로써 이런 허황된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 여기 끌려와 피땀을 흘린 백성들의 한을 풀어줌과 아울러 진나라와 시황제의 어리석음을 영영 땅속에 묻어버리려 하오.”

항우가 그렇게 받았다.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죽이고 태운 소문만 남기게 되는 게 걱정된 계포가 넌지시 항우를 깨우쳤다.

“부수어 봤자 땅속에 있는 것이라 세상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태우시려 해봤자 타지도 않는 흙덩이라 군사들만 수고롭게 할 뿐입니다. 부수고 태운 일은 우리 군사들이 아방궁에서 한 일만으로도 넉넉합니다.”

하지만 항우는 그런 계포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