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장사와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매일 아침마다 날씨를 걱정했다는 이야기는 자연 현상과 떨어져 살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올해엔 예년에 비해 더 많은 비가 올 것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홍수 피해 걱정이 앞선다. 지금부터라도 댐이나 저수지 같은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노후한 시설의 개보수 작업을 서둘러야겠다.
수리(水利)만 생각한다면 댐은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무한정 크게 할 수는 없다. 적정한 규모를 산정해야 하는데 이때 과거 경험과 기상자료 등이 이용된다. 그러나 자연은 항상 인간의 경험과 예측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하루 강수량 400mm는 200년에 한 번 있을까 할 정도로 드물다. 당연히 국내 수리시설의 대부분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강수량에 대비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태풍 루사 때는 특정 지역에 하루 동안 870mm의 비가 내려 노후한 저수지나 보(洑) 등이 붕괴되는 바람에 엄청나게 큰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 농촌 어디에나 저수지나 보가 한두 개씩은 있다. 전천후 영농을 위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광복 이후 대략 1개 리(里)에 하나 꼴로 수리시설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 수가 6만8018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당시 건축 기술과 자재 부족, 기상자료 부족 등으로 인해 근래에 만들어진 시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허약하다.
과거에 만들어진 시설은 적은 양의 비에는 어느 정도 기능을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강한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닥치면 붕괴나 범람으로 인해 그 시설이 없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농업용 수리시설 중에 규모가 큰 시설은 농업기반공사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는데, 현재 공사가 관리 중인 1만2685개 시설 중 절반인 6565개 시설이 노후한 상태라고 한다. 그중 3140개 시설은 재해의 위험을 안고 있어 매년 5000억원 이상의 유지비용이 필요한 실정이다.
동네마다 있는 농업수리시설이 기상재해가 있을 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잠재적인 위험요소가 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장기계획에 따라 수리시설을 개보수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연간 예산 투자는 3500억원을 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외국처럼 수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은 아예 엄두도 못 낼 형편이다. 저수지나 댐 등 수리시설은 대개 주변 경관이 수려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은데도 우리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해 두는 것이다.
노후시설을 현상 유지 수준에서 땜질식으로 개보수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제부터라도 수리시설 현대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물 수요자인 농민이 쌀농사와 밭농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농지를 범용화하고 과학영농을 통해 용수 수급을 적절히 조절토록 해야 한다. 수리시설을 개보수할 때는 미관과 관광 휴식기능 등도 충분히 고려해 종합적인 개보수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정재 서울대 교수·생물자원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