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 현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내부 경선 과정에서 ‘좌익의 사위’라는 공격을 받았다. 부인 권양숙씨의 부친이 좌익이다, 좌익의 딸이 대통령 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친일파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이 두 정치인은 모두 부모의 과거에 연좌(緣坐)된 셈이었다.
▼젊은세대가 시대착오적 거론▼
이 연좌제 논쟁은 대통령선거가 끝나면서 사라진 듯했으나 올해 들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자 이번엔 ‘독재자의 딸’이라는 공격이 제기됐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근태 의원이 입각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그의 친형이 월북한 좌익’이라는 수군거림도 나왔다.
좌익과 관련한 연좌제는 남북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5공화국 정부가 폐지한 제도다. 군 출신 대통령이 폐지한 이 연좌제가 20여년 만에 다시, 그것도 기성세대가 아닌 전후 젊은 세대에 의해 제기된 것은 우리 정치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세대교체에 의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5공 정부가 연좌제를 폐지했을 때 국민은 그 진취적 결단에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연좌제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아 왔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으며 이는 당사자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6·25전쟁을 전혀 모르는 세대에게, 그 가족 중 월북자가 있다고 해서 온갖 사회적 제약을 가해 온 것은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과 달리 우리 정치권에서, 그것도 전후세대에 의해 과거로 되돌아 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정치인 본인의 행정과 사상, 그리고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지 부모와 가족의 과거와 결부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6·25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이미 60세 가까이 되는 마당에 연좌제를 거론하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2년 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노 후보를 연좌제로 걸어 공격한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일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이 후보에 대해 그런 식으로 공격한 것도 잘못된 일이었다. 또한 박 대표를 부친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연계해 공격한 것도 잘못이다. 좌익과 관련된 연좌제가 부당하다면 부모가 친일파니 독재자니 하고 말하는 것도 삼가야 마땅하다. 그래야 형평에도 맞을 것이다. 부모나 가족의 과거문제가 우리 정치의 주요 공격거리가 되는 것은 그 만큼 우리 정치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낙후되어 있다는 증거다.
▼당사자 생각-정책 놓고 평가를▼
그동안 우리 정치를 이끌어 온 양대 세력은 이른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었다. 이 두 세력은 선거 때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때때로 색깔공세를 취했다. 1963년 대선 때는 야당이 여당의 박정희 후보를 좌익경력자로 공격했고 그 이후에는 여당이 야당의 김대중 후보를 색깔론으로 괴롭혔다.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좌익 연좌’, ‘친일 연좌’, ‘독재 연좌’ 등의 논란도 그 잔재라 할 수 있으며 우리 정치의 낡은 유산이다.
우리의 국가발전 단계로 볼 때 이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그런 만큼 정치지도자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누가 시대적 요구에 맞는 지도자로 적임인지, 그 지도자를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박범진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