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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2001년 테러범 맥베이 死刑 집행

입력 | 2004-06-10 20:30:00


테러리스트 티모시 맥베이.

그는 온순하고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맥베이는 고교 졸업 후 바로 군(軍)에 입대했다. 1991년 걸프전에 참전했고 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그리고 그 4년 뒤.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건물에 폭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돌진한다.

9층 건물은 마치 융단폭격을 맞은 것처럼 폭삭 가라앉았고 168명이 숨졌다. 미 역사상 최악의 테러참사였다. 9·11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범인이 체포됐다. 맥베이였다.

그는 법정에서 당당했다. “나는 미국에 의해 살인무기로 길러진 병사다!”

맥베이는 군에 있으면서 ‘세계는 총(銃)이 지배한다’는 역사관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다람쥐를 죽인 것에 대해 말하면서 울먹이던 젊은이가 ‘괴물’로 변하기까지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뉴욕 타임스는 묻는다. “이 모범적인 시민이 테러리스트가 될 때까지 미국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는 사형을 선고받자 승리의 ‘V’자를 그려보였다. 확신범이었다. “1800년대 노예제도 폐지를 주창했던 존 브라운과 같은 자유투사로 기억되고 싶다.”

연방청사 내 탁아소에 있던 유아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연방정부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희생은 ‘부차적(Collateral)’인 것이다!”

2001년 6월 11일. 6년간의 논란 끝에 그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다. 맥베이의 몸에 3종류의 독극물이 동시에 주사됐다.

그는 유언 대신 ‘나는 내 운명의 주인/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영국의 반항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 석 달 뒤 9·11테러가 발생한다.

세계는 이때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맥베이의 망령(亡靈)’을 보아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오폭(誤爆)으로 민간인 희생이 잇따르자 토미 프랭크스 중부사령관은 말했다.

“이것은 전쟁이다. 민간인의 죽음은 어디까지 ‘부차적인 손상(Collateral Damage)’이었다.”

부차적이라니?

문명사회는 마침내 ‘더러움을 더러움으로 갚는(Dirty for Dirty)’ 야만으로 가는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