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약인 만큼 국민과의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
“건설사로부터 ‘차떼기’로 돈을 받았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9일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뒤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는 총선 공약을 지키라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으로선 적지 않게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정치인들을 만나면 “‘선거 전’보다 ‘선거 후’가 더 힘들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선거 전에는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선거에서의 표를 의식한 약속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면 ‘차가운 현실’이 기다린다. 국가 재정의 한계 때문에, 또는 현실과 맞지 않거나 엄연히 작동하는 국제질서의 메커니즘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때가 적지 않다. 때로는 공약에 너무 집착하다가는 경제를 망치고 국익을 해칠 수도 있다.
예산분야에 정통한 박봉흠(朴奉欽)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지난해 1월 ‘뗏목론’을 내놓았다. 그는 “많은 짐을 싣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가야 한다”며 대선공약을 이행하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서민들의 주택구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제전문가 사이에서는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노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는 견해가 훨씬 우세하다.
분양원가 공개 반대를 비롯해 성장-분배 문제, 부유세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예민한 현안에 대해 시장원리를 강조한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발언에 대해 전문가들이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공약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라를 위해 정말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단지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강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종합적인 검토 끝에 만약 문제가 있는 공약이고,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때론 수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일 수 있다. 이 같은 실용적인 접근은 다른 공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방향 전환’에 대해서는 국민도 인색한 평가를 내릴 필요가 없다.
공종식 경제부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