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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中, 이창호 9단 결승 오르자 “우승 물 건너갔다” 탄식

입력 | 2004-06-13 17:22:00

이창호 9단(오른쪽)이 춘란배 4강전인 후야오위 7단과의 대국에서 장고하고 있다. 사진제공 사이버오로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만리장성을 넘는다.

이창호 9단이 10일 후야오위 7단을 꺾고 제5회 춘란배 결승에 진출하자 중국 바둑계에는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이 9단을 이겨줄 기사가 아무도 없느냐’는 것. 특히 결정적인 대국일수록 중국선수가 승리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한탄이었다.

이번 춘란배에 거는 중국의 기대는 대단했다. 중국에서 주최하는 유일한 세계기전임에도 지금까지 중국 선수가 우승하지 못했다. 이번 춘란배 8강의 면모를 보면 중국 기사 6명, 일본 1명, 한국 1명이었다.

중국은 우승의 8부 능선까지 올라갔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스스로 ‘유일한 근심거리’라고 말한 것이 있었다. 한국 선수 1명이 바로 이 9단이라는 것. 중국에선 이 9단을 중국 바둑계의 ‘공적’(公敵)이라고 서슴없이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8강전 상대였던 창하오 9단을 비롯해 마샤오춘 9단 등 중국 일류 기사들이 이 9단에게 여러 차례 상처를 입은 뒤 전성기를 마감했기 때문.

이 9단에게 4승 18패로 뒤지고 있는 창하오 9단은 이번 8강전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하며 바둑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고 싶다는 비장한 임전소감을 밝혔었다.

창하오 9단은 8강전에서 중반까지 유리했으나 막판에 잇달아 터진 이 9단의 승부수를 막지 못하고 역전패 당했다. 창하오 9단의 부인 장쉔 8단은 “중국의 인터넷 중계에선 창하오 9단이 유리했는데도 이 9단이 반면 10집을 앞서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나왔다”며 “이 9단을 이기려면 이 9단에 대한 두려움과 자국 선수에 대한 불신부터 없애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 9단의 4강전 상대는 후야오위 7단. 중국측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대국 수가 많진 않지만 이 9단과의 역대 전적에서 후야오위 7단이 2 대 1로 앞서고 있었기 때문. 왕루난 중국기원 원장은 “중국의 우승은 후야오위 7단에게 달려 있다. 후야오위 7단이 이 9단을 막지 못하면 결승전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후야오위 7단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이 9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중국 바둑계는 이미 우승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단판이라면 몰라도 결승 3번기에서 이 9단에게 2승을 거두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결승 상대인 저우허양 9단은 대 이 9단 성적이 3 대 2로 앞선다. 하지만 최근 대결한 2002년 농심배와 춘란배에서 이 9단이 2연승을 거뒀다.

김성룡 7단은 “중국 기사들이 자꾸 이 9단에게 지니까 바둑 팬들이 중국의 승리에 잔뜩 기대를 걸게 되고, 이것이 중국 기사들에게 오히려 심적 부담이 돼 이 9단과의 대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역전패 당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우 9단도 과거와 같은 승부 호흡을 못 보여주고 있어 이 9단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춘란배 결승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