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이들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우스운 질문 같겠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대표적 진보단체로 알려진 참여연대는 주주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제 입법 등으로 ‘재벌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경제적으로 볼 때 ‘레이거노믹스’같이 작은 정부와 시장의 자유를 통한 효율성 증대를 강조하는 것이 보수(우파)이고,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 개입과 사회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진보(좌파)라고 한다면 해석은 달라진다.
참여연대의 재벌개혁 논리는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것 같다. 유럽식이 종업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를 반영하는 데 비해 미국식은 주주 이익 극대화가 초점이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참여연대의 주장은 주주와 시장의 논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우파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의 주요 기업과 경제 전반이 국제 헤지펀드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그럼 ‘글로벌 스탠더드’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어떤가. 장 교수는 섣부른 시장개방의 부작용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좌파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재벌체제의 강점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어디로 분류할지 난감하다.
특정 시민단체나 유명인사를 흠잡자는 게 결코 아니다.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분법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담아낼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현재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진보-보수, 개혁-반(反)개혁 논쟁은 내용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실용적이지도 않다. 어떤 주장을 보면 기존의 모든 것을 반대로 뒤집는 게 개혁이라고 생각하는가 싶을 정도다.
얼마전 본보는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규제로 거래가 마비돼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부동산발 자금경색이 우려된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 후 몇몇 독자가 전화해 “정부가 잘하고 있는데 왜 업계와 투기꾼 편을 드느냐”면서 ‘반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큰 방향에서 맞다고 본다.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급속한 부동산시장 위축은 가계와 은행의 부실로 이어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책 성공을 위해서도 그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필요한 것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잘사는 나라,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를 지향하며 현실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모두 진보고 개혁이다. 이러한 사회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방법과 우선순위에 의견 차이들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부패 청산, 사회 개혁, 투자 증대, 일자리 창출, 성장동력 확충 등 우리 앞에 놓인 많은 과제들은 ‘효과와 부작용’을 따지는 정교한 해법을 요구한다. 이런 방법에 대해 토론하지 않고 내편 네편부터 따진다면 생산적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 세계는 이미 좌우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진보냐 보수냐 같은 공허한 ‘이름 붙이기’와 ‘편가르기’로 국력을 낭비할 일이 아니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