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연구원이 발행하는 주간 ‘금융동향’을 뒤적이다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지동현 선임연구원이었습니다.
지 박사는 지난해 9월 금융연구원 연구원에서 LG카드 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영입돼 6개월 동안 현장 금융을 경험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그는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고민한 것을 현장에 적용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LG카드의 회생을 돕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LG카드는 회생에 실패했고 채권 금융회사들의 공동관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LG카드 몰락은 리스크 관리의 실패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그래서인지 지 박사가 금융동향에 쓴 보고서 제목은 ‘영업에서부터의 리스크관리’였습니다.
“카드회사 영업 책임자들에게 ‘2000년을 전후해 왜 그렇게 무리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들은 ‘경쟁자들은 다 고객 늘리기에 나섰는데 나만 리스크관리 운운하면 당장 사표를 내야 했을 것’이라고 답하더군요.”
지 박사는 보고서에서 한국 금융회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최고경영자(CEO) 이하 영업 직원들의 잦은 교체와 단기 성과주의라고 지적했습니다.
은행장이나 카드회사 사장은 3년 단위로 바뀌고 사업본부장은 2년 주기로 바뀌고 지점장은 1년이면 바뀌는 체제 아래서는 모두가 나중의 위험을 생각하기 보다는 눈앞의 실적을 높여 좋은 자리로 승진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 박사는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는 현장에서, 즉 고객을 유치하는 순간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려면 능력 있는 CEO와 영업맨들이 오래 자리를 지키고 미래의 부실을 고려해 현재의 영업 실적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 박사는 또 본점 직원들이 영업점을 잘 장악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능력과 여건을 키우는 일도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지 박사의 충언을 잘 실천한다면 제2의 LG카드사태는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