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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7년 미국, 성조기 국기 채택

입력 | 2004-06-13 18:47:00


공기가 없는 달 표면에서 성조기(星條旗)가 나부낀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착륙 장면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는 조작설에 내내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정작 NASA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달에 성조기를 꽂은 것은 국제규약에 어긋난다”는 비판이었다. ‘달을 포함해 외계 우주공간은 인류의 공유이며 그 어느 국가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

NASA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했다. “우리는 정복의 깃발이 아닌 자유와 평화의 깃발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2003년 4월. 바그다드에 진주한 미군이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면서 이를 성조기로 덮었을 때 미국 국기는 또다시 “(이라크전쟁이) ‘해방전’인가 ‘정복전’인가” 하는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인들에게 성조기는 특별하다. 1777년 국기로 채택된 이래 다인종 다민족 국가의 강력한 구심점이 돼 왔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적지인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 가운데는 이탈리아계가 적지 않았다. 사령관은 물었다. “피를 따르겠느냐, 성조기를 따르겠느냐?”

병사들이 다투어 성조기의 기수(旗手)를 자처했다고 하니 그들에게 성조기는 ‘피보다 진한’ 것이었다.

9·11테러 당시 잿더미에 묻힌 세계무역센터에서 맨 먼저 일으켜 세운 것도 성조기였다. 그 다음날 월마트 매장에서는 11만6000개의 성조기가 팔려나갔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들이 성조기의 ‘패트리엇 게임’에 몰두해 온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미국의 대학생들은 정부의 베트남전 참전에 반대해 성조기를 불태웠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강경 보수’와 ‘강경 진보’로 국론이 갈리고 있다며, 이를 성조기의 상징색에 빗대 ‘미국의 적(赤)-청(靑) 분단’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 아니라 이념과 문화의 충돌로 가고 있다. 분열은 ‘분리’의 수준에 이르렀다….”

65개의 헝겊조각을 꿰매야 만들 수 있다는 성조기. 그 통합의 상징이 두 가지 색깔로 찢기고 있으니!

그런데, 우리 역시 성조기에서 한 가지 색깔만을 보고 있는 ‘정치적 색맹(色盲)’은 아닐까.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