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반 만에 돌아왔어요.“ 소속팀 해체와 드래프트 파동에 휘말려 대만으로 떠났던 농구 유망주 정진경이 신세계 유니폼을 입고 국내무대에 복귀했다. 14일 처음으로 팀에 합류해 포즈를 취한 정진경. 사진제공 신세계
‘제2의 박찬숙’으로 불리던 농구 꿈나무가 있었다. 큰 키에 개인기까지 갖춰 장차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 재목으로 꼽혔다.
하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속에서 소속팀의 해체와 드래프트 파동을 겪으며 한국을 떠났다. 어린 마음에 농구를 하고 싶어 낯선 땅에서 국적까지 바꿨다.
그로부터 6년 넘는 세월이 흘러 다시 모국의 품에 안겼다. 가슴 속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비운의 센터’ 정진경(26). 국가대표를 거쳐 대만으로 건너갔던 그가 한국 무대에 컴백했다. 정진경은 14일 여자프로농구 신세계와 입단 계약을 했다. 계약기간 5년에 첫 해 연봉은 5000만원.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할게요.”
1m91의 정진경은 숭의여고 시절 초고교급 스타로 주목받았다. 96년 11월 여자 실업 코오롱에 입단할 때는 당시 최고인 2억5000만원에 이르는 스카우트비를 챙겼다.
그러나 98년 코오롱의 해체로 둥지를 잃었고 신용보증기금의 지명에 반발해 대만으로 떠났다. 대만 국적까지 취득한 그는 오른쪽 무릎 십대인대가 끊어져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으나 2002년 일본에서 수술을 받고 1년여에 걸친 재활훈련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부터 대만 실업 대원 팀에서 3시즌을 뛰며 올 봄엔 팀을 2위로 이끌었다.
어른들의 스카우트 분쟁에 휘말려 희생양이 된 정진경이 국내에 돌아오게 된 데는 고교 19년 대선배인 박찬숙씨의 영향이 컸다. 지난 연말부터 신세계의 러브콜를 받고 망설이다가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여자농구 월드리그에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한 박씨로부터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들은 뒤 결심한 것.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5년 자격정지 징계는 지난해 이미 풀린 상태여서 정진경은 조만간 한국 국적을 회복한 뒤 올 겨울리그부터 출전한다.
아버지가 수도공고와 국민대에서 농구 선수로 활약한 정영석씨(50)로 농구인 2세인 정진경은 장신인데도 움직임이 유연하고 패스감각이 뛰어나며 슈팅 능력까지 겸비했다.
신세계 김윤호 감독은 “정진경은 센터인데도 가드 못지않은 볼 감각을 갖췄다. 몸 상태가 80% 정도인데 앞으로 꾸준히 근력훈련을 하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찬숙씨는 “한창 뛰어야 할 나이에 그렇지 못해 안타까웠다”면서 “몸이 약한 게 단점이지만 멀리 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면 대성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