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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한라산과 백두산의 교신’

입력 | 2004-06-14 18:29:00


14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남북 해군 함정 사이에 1953년 휴전 이후 처음으로 무선교신이 이뤄졌다. “여기는 한라산”이라며 대화를 시도한 남측 함정에 “여기는 백두산”이라고 북측 함정이 화답했다.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남북의 약속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소수의 남북 군인이 참여한 ‘작전’이지만 민족 전체에 대화를 통해 유혈충돌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고 본다.

오늘부터는 남북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상호 비방과 선전을 중단하고 내일은 확성기 등의 선전수단 제거를 시작한다. 1999년과 2002년 해전이 벌어졌던 바다가 ‘소통의 무대’로 변하고, 군사력이 집중된 대치지역에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위를 포기하는 역설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오늘이 6·15 공동선언 4주년이라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4년 전 남북 정상회담은 화해를 위한 큰 발걸음이었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그날의 감동에는 못 미친다. 인적·물적 교류가 늘어나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남북 지도자가 만나 화해의 악수를 했던 상징성을 넘어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북이 여전히 가슴을 열지 못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6·15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위해서는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인 핵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러 어려움을 딛고 평양행을 택했듯이 김 위원장도 답방약속을 지키기 위해 핵 포기의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남북의 군이 일궈낸 변화가 재도약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실무 차원의 작은 화해와 정상 차원의 큰 화해가 병행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훨씬 빨리 달성될 수 있다. 서해에서 이뤄진 ‘한라산과 백두산의 교신’이 남북 군의 핵심부, 서울과 평양 지도자의 대화로 확대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