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젊어서는 시장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에 더 가까웠다.”
10일 오전 7시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난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는 언제나처럼 진지한 표정이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 그만큼 다양하게 인생의 변곡점을 거친 정치인도 드문 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다양한 경험을 삭이고 씹어 교수가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차근차근 설득하려 애쓴다. 이 때문에 그의 답변은 보통 정치인들과 같은 분량의 답을 듣는 데 반쯤은 시간이 더 걸리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이미지가 무겁다는 지적이 많다”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느라 말을 멈추었다가 “나는 가볍게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매사에 깊이 생각하고 결정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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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는 최근 각종 공식 행사 때마다 붉은 색 계열의 넥타이를 주로 맨다. ‘튀어야 하는’ 시대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이날도 그의 넥타이는 눈에 뜨일 정도로 밝은 붉은 색깔이었다.
손 지사는 먼저 4월 미국 방문 때 투자유치를 위해 듀폰그룹 회장을 만난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의 변신 과정을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듀폰 회장은 처음 만나자마자 세계적 리더가 갖춰야 할 철학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갑자기 물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평화(peace)’라고 답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방됐는데 원활한 경쟁을 위해선 세계적 평화 유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한국의 리더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묻는다면 ‘시장 마인드’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국경이 무의미해진 세계 속에 살고 있고 시장원리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 경쟁력을 강조하는 ‘시장주의자’로 바뀌었지만 손 지사는 1965년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 후 15년간 줄곧 ‘강성 운동권’에 속해 있었다. 당시 서울대에선 경기고 동기동창인 ‘정치학과 손학규, 경제학과 김근태(金槿泰), 법대의 조영래(趙英來)’가 운동권의 트로이카로 통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1980년 4월 당시 운동권 출신으로는 드물게 영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 계기였다. 그는 영국에서 80년대 사회주의 정책의 병폐가 집약된 ‘영국병’을 목도했다.
“유학 중 동료 학생 한 명이 박사과정으로 진급할 예정이었는데 ‘장학금을 안 줘서 공부를 안 하겠다’고 했다. 놀면서 실업수당을 받겠다는 것인데 그게 1980년대 영국 사회였다. 한국에선 북한이 서양 신문에 김일성 우상화 광고를 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영국의 ‘더 타임스’에 그런 광고가 난 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더구나 내가 당시 이상국가로 생각했던 중국의 유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와 ‘우리가 엄청난 발전을 한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을 걸어 와 놀랐다.”
“유학 중 당시 중공(지금의 중국)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 사람을 만나면 반공법에 걸려 만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북한 김일성이 서양 신문에 광고를 낸다고 해도 믿지 않았는데 실제 ‘깨알 같은’ 전면광고를 내는 것을 보고 놀랐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낙후된 조국이긴 했지만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서는 소득불균형이 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사물을 이념 대결만으로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대학 졸업 후 소설가 황석영(黃晳暎)씨와 함께 구로공단에 뛰어들어 사회 변혁을 시도했던 그였기에 ‘영국 쇼크’가 던진 파장은 컸다.
지금은 인구 1000만, 국내지역 총생산(GRDP)의 25%를 차지하는 경기도를 책임진 도지사의 위치에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당시의 인권 탄압은 분명 잘못이지만 경제발전의 비전을 세워 경제건설의 성과를 거둔 것은 재평가할 대목이다.” 도정(道政)은 그의 리더십을 펼쳐 보기 위한 시험대였다. 수도권 총량제와 신행정수도 이전, 경기도의 분도(分道) 논란 등 현안마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말을 할 때마다 ‘시장’과 ‘경쟁력’이란 화두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이미 시장이 세계화된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데도 현 정부는 균형발전 논리에 집착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그는 “현 정부의 세계화 지수를 얼마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완전히 낙제다. 균형발전론이 현 정부의 이데올로기처럼 돼 있어서 그런지 경제부처 관료들마저 경쟁력이란 단어를 쓰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을 수 있느냐”고 혹평했다.
최근 천도(遷都) 논란으로 번진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아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수도 이전 문제는 진지한 국민적 합의 노력 없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됐다”며 “막대한 이전 비용, 국론분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에 눈감은 한나라당도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의 리더십을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주의’라고 규정했다. 손 지사는 “종합비타민처럼 폭넓은 경험을 갖췄지만 무언가 리더십의 특징이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는 질문에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다양성을 나만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라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그는 좌우 극단으로 흐르는 ‘일방주의’에 대한 경계론을 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진정 우리가 치열하게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민주화가 뭔지도 몰랐던 사람 아니냐”며 “1970년대 말, 80년대 초의 ‘래디컬’(급진적)한 정치적 입장을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21세기에 갖다 놓은 셈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한미관계 등 현 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자주국방의 실체를 알리지 않고 국민을 감정적으로 선동해선 안 된다”며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성격에 신중히 접근해야 하고 과거의 냉전적 잣대를 지금 시대에 적용하면 안 된다”고 신중론을 폈다.
당 지도부의 ‘보수진영 쇄신론’에 대해서는 보수 대 진보의 틀을 뛰어넘는 ‘변화의 리더십’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어렵고 정치에서 보수란 용어 자체가 좋은 말은 아니다”라며 “국민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던지는 리더십을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당내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등 잠재적 대권후보군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민감한 듯 말을 아꼈다.
‘융합의 리더십’을 표방하고 있는 손 지사의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손 지사는 “말로만 외치는 것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지켜보면 되지 않느냐”고 웃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손학규 경기지사(오른쪽)는 최근 본보와의 집중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세계화 지수를 얼마로 보느냐”는 질문에 “완전히 낙제”라고 혹평했다. 손 지사는 경쟁력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주의’를 역설했다.-이훈구기자
▼말많았던 정치입문▼
“나는 80년대 후반 사회변혁론이 한창일 때 대학 강단에서 ‘무지막지한 좌파는 안 된다’고 학생들을 설득했다.”
1988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손학규 경기지사는 서울대와 서강대, 중앙대 강사를 거쳐 1990년부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진보성향의 소장파 교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강의했던 ‘한국정치론’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정평이 났다.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김대중(金大中) 평민당 총재와 재야인사인 장기표(張琪杓)씨 등에게 직접 ‘통일론’을 강의토록 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시대 분위기에서 어떤 교수는 학생이 시험지 답안 끝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쓰면 A학점을 주기도 했지만 나는 학생들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당시 손 지사의 강의를 수강했던 한 학생은 “교수님은 학생들이 자연스러운 논쟁을 통해 균형적 시각을 갖도록 유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93년 3월 경기 광명을 보궐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당선돼 정치권 입문에 성공했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민자당 공천에 일부 학생들은 “강단을 버리고 왜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 뛰어드느냐. 또 굳이 민자당을 선택하나”라고 반발했다.
그는 고심 끝에 “내가 무엇이 되는지보다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 달라”며 “김영삼(金泳三) 정부 초반의 개혁을 견인하겠다”고 학생들을 설득했다. 그는 당시 사표를 던져 ‘배수진’을 쳤다.
그의 정치권 입문은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이 1996년 15대 총선에서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등 운동권 출신 개혁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손 지사는 최근의 탄핵사태와 관련한 질문에 “당시 국회에 있었다면 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정치권이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