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전도연이 1인2역을 맡은 판타지 드라마 ‘인어공주’. 사진제공 유니코리아
《‘영화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 ‘인어공주’(박흥식 감독)는 그 바다에 숨어 있는 ‘진주’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한국 영화로는 보기 드문 판타지 수작이자 전도연의 1인2역 촬영장면으로 기술적 완성도도 높은 영화다. 영화는 우체국 직원 나영(전도연)이 우연히 엄마 연순(고두심)의 스무 살 시절로 들어가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엄마의 꿈과 사랑을 지켜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인어공주
왜 ‘인어공주’일까? 지금은 목욕관리사(때밀이)로 일하고 있는 연순의 젊은 시절 직업이 해녀이고, 나영의 아빠 진국(박해일)이 한글을 배우는 연순에게 동화책 ‘인어공주’를 선물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나의 어머니께’라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엔딩에서 귀를 사로잡는 것도 푸른 바다 속을 인어처럼 헤엄치는 젊은 연순을 감싸 안듯이 흐르는 노래 ‘To Mother’(조성우 작사, 작곡).
이 영화에는 젊은 시절 연순과 진국의 사랑이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박 감독의 어머니, 나아가 이제는 어머니라는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젊은 나영과 어머니 연순의 화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메시지다.
목욕탕에서 침을 수시로 뱉고 걸핏하면 욕을 해대는 연순은 사랑을 위해 죽음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는 동화 속 아름답고도 슬픈 인어공주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연순과의 만남 이후 “우리 엄마는 때밀이예요”라고 나영이 말하는 장면은 억센 엄마도 젊은 시절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꿈을 지닌 존재였음을 깨닫게 됐다는 나영의 고백이자 반성이다.
젊은 딸과 나이든 엄마의 갈등과 화해.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유쾌하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일으켜 세운 것은 박 감독의 연출력이다. 소품은 물론 스치듯 지나가는 대사까지 치밀하게 배치해 마치 ‘세밀화’를 연상시킨다. 너무 계산적으로 꾸며져 인공적인 느낌도 주지만 섬세함이 관객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힌다.
● 목욕탕과 바다
작품의 주요 공간으로 바다와 목욕탕이 설정된 것은 절묘한 선택이다. 거칠게 말해 바다의 ‘인어공주’(어머니들)는 뭍으로 나와 목욕탕으로 갔다! 그리고 동화와 달리 죽지 않은 채 현실 속에서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다는 젊음, 꿈, 판타지, 행복한 과거가 어우러지는 젊은 연순의 공간이다. 반면 목욕탕은 세월과 생활의 ‘때’가 잔뜩 묻어 있는, 나이 들고 추레한 연순이 존재하는 곳이다. 두 공간의 상반된 이미지는 판타지와 현실에 자리 잡은 두 캐릭터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나영은 연순의 젊은 시절과 현재를, 젊은 연순은 젊은 시절의 진국을 관찰하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을 보내기 때문이다.
전도연은 “‘인어공주’는 내 연기인생의 결정판이자 종합선물세트”라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나이든 연순 역의 고두심과 젊은 진국을 연기한 박해일도 매혹적인 앙상블을 이뤄냈다. 25일 개봉. 전체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