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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유병한/영어 많이 쓴다고 일류도시 되나

입력 | 2004-06-15 18:34:00


최근 서울시는 세계 일류도시를 지향한다며 ‘시내버스 색깔 체계와 영문 표기’, ‘하이 서울(Hi Seoul) 구호’, ‘영어마을 조성’, ‘영어공문서 작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 구사 능력이 세계화시대의 필수 요건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 밑바탕에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이는 국수주의나 폐쇄주의가 아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의 국적과 취향은 다양하다. 그들이 감성으로 서울에서 느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아야지, 영어를 많이 쓴다고 해서 서울이 세계 일류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질서한 거리 안내판, 공공 광고물, 가로등, 건물의 색과 모양, 보도 등 거리시설물을 공공디자인의 관점에서 새롭게 빚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영어 강조’ 정책은 언어정책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원래는 비영어권이었으나 식민지 경험 등 역사적 배경 때문에 불가피하게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 중 영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인도의 경우도 인구의 2%만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영어공용화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유럽은 하나의 공동체를 꿈꾸면서도 2001년을 언어의 해로 정해 각국의 언어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는 다양한 사업을 벌인 바 있다. 중국 일본은 자국어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의 중심적 징표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영어를 중시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외국어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말을 소중히 하는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유병한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