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랜만에 열차사고가 났군요(김재영 아나운서).”
“네, 이렇게 큰 사고는 정말 오랜만이죠(하일성 해설위원).”
전국에 이 멘트가 TV 생중계로 나갔으니 난리가 난 건 너무나 당연한 일.
때는 1981년. 경북 경산시에서 열차 추돌사고가 일어나 55명이 사망하고 243명이 중경상을 입는 최대의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동대문구장에서 고교야구 중계를 하던 하 위원과 김 아나운서는 PD의 지시에 따라 ‘스폿 뉴스(토막 속보)’를 내보냈는데 상황에 안 맞는 멘트를 하는 바람에 나중에 둘 다 시말서를 써야 했다고.
20년 이상 야구해설을 한 KBS 하일성 위원(55)의 경우 고교야구 중계와 관련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무궁무진하다. 황금사자기하고도 인연이 많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황금사자기 인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아침부터 사람들로 운동장이 꽉꽉 찼다니까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죠.”
관중들이 워낙 많다 보니 TV 중계석에 한번 들어가면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경기 끝날 때까지 나오질 못했다고. 게다가 고교야구 중계는 한번 들어가면 2경기, 3경기 연속 중계하는 것은 기본. 화장실에 갈 틈도 없었다고 한다.
“7, 8시간 계속 앉아서 중계해야죠. 밖엔 사람들이 꽉 차서 나갈 수도 없죠. 죽겠더라고요. 아예 양동이를 갖다 놓고 해결했다니까요.”
SBS 박노준 해설위원(42)은 현역 선수 시절 황금사자기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정말 감회가 깊은 대회입니다. 그때 결승전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죠. 잊을 수가 없어요.”
박 위원이 말하는 그때는 1980년.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의 최고 인기스타였던 박 위원은 제34회 황금사자기대회 광주일고와의 결승전에서 3-2로 앞선 8회말 최고의 투수 선동렬(현 삼성 코치)로부터 2점 쐐기 홈런을 날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선동렬로부터 홈런 1개 포함, 4타수 3안타 3타점을 거둔 선수가 그 말고 또 있었을까.
MBC 허구연 해설위원(53)도 황금사자기를 잊을 수 없다.
67년 대회에서 최고의 왼손 투수 임신근씨(작고)가 버틴 경북고를 꺾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 당시 1학년으로 경남고 6번 타자 겸 2루수로 뛰며 3할8푼대의 맹타를 휘둘렀던 허 위원은 타격왕을 눈앞에 뒀으나 허리 부상에다 팀이 패자부활전을 거치는 바람에 경기수가 늘어 아깝게 타격왕을 놓쳤다고.
“어우홍 당시 경남고 감독님이 결승전이 끝난 뒤 목욕탕에서 절 부르더군요. ‘구연아. 타격왕 놓쳐서 많이 섭섭하지?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기려면 네가 계속 나가야 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단다. 허리 많이 아프지?’라며 위로해 주더군요. 어찌나 고맙던지….”
이들에게 황금사자기는 가슴 한 구석에 아련히 묻혀 있는 추억이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