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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서럽다]다이어트 잔혹사

입력 | 2004-06-17 18:04:00


《코 고는 남자도 많고 비듬 많은 여자도 많다. 권투에 빠진 여자도 있고 뜨개질에 십자수가 취미인 남자도 많다. 담배 피우는 의사에 술고래인 한의사들도 많고 설탕 좋아하는 치과의사도 있다. 뚱뚱한 국회의원 장관 사장님도 많다. 그렇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어떤 시비도 걸지 않는다. 남의 개인적인 일에 간섭하고 신경 쓸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여자가 살이 찌면 온갖 수모에 무차별 공격당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 뚱뚱하면 죄인

풍만한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당하는 언어폭력만 해도 소설 한 권은 쓰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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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이유 없이 자신을 째려보며 ‘으이, 밥맛없게 생겼네’라며 피우던 담배꽁초를 던져서 옷에 구멍이 난 여성. 그 사건 이후 그는 사람을 피하게 되고 남자들이 모여 있으면 돌아서 가는 대인공포증에 시달린다.

직장여성 김선영씨(가명·31)는 출근하기 두렵다. 동그란 얼굴에 볼 살이 많은 그녀에게 동료들은 아침마다 빈정거리듯 인사를 한다.

“얼굴이 부었네. 어제 술 마셨어? 아주 달덩이가 떴네, 떴어.”

하지만 그녀는 아예 술 냄새도 못 맡는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도망가고 싶어지는 이지선씨(가명·28).

“여자 몸이 그래서 어디 시집 좋은 데 가겠나. 일은 안하고 빈둥거리니까 자꾸 몸매가 망가지는 것이지.”

그 사람들의 눈엔 주야로 컴퓨터 관련 재택업무를 하는 것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오락이나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자들이 하는 일은 결혼 대기시간을 때우는 심심풀이 아르바이트로 생각한다.

“칼로 허벅지를 도려내고 싶어요”라고 절규하는 중학교 3년생 현이는 우울증과 분노에 시달린다.

“너 살 좀 쪘구나. 방학 동안 먹고 자고 빈둥거렸구나”하는 담임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거식증에 빠진 고교 2년생 수진이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피골이 상접한 몸매를 가지고도 뚱뚱하다는 극도의 열패감에 시달린 환자를 살려줄 수 있는 것은 강제로 링거주사를 맞히는 방법밖에 없다.

○ 젖먹이도, 할머니도 다이어트 열풍

다이어트 열풍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도 비켜가지 않는다.

최근에 방영된 TV 공개 다이어트 프로그램 한 장면. 뚱뚱한 초등학생 옆에서 엄마가 속상하다며 울고 있다. 자기가 엄마를 슬프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아이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엄마는, 또 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방송 팀은 알기나 할까.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여자아이. 날씬한데도 살을 뺀다고 일주일을 굶었다. 엄마가 보는 데서는 밥을 딱 세 숟갈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등굣길에 졸도해 치료를 받았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딸아이를 날씬하게 키운다고 어렸을 때부터 음식에서 지방을 골라내고 발레학원으로, 수영장으로 내몬다.

찜질방에서 땀을 빼는 할머니들의 화제도 몇 kg이 줄었다, 늘었다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종아리 근육을 줄이기 위해 보톡스 주사를 맞고 지방을 빼내고 심지어 위를 잘라낸다. 남편인 의사에게 지방 흡입술을 받던 아내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피골이 상접하게 마르는 게 최고의 목표인 여자는 암에 걸려서 삐쩍 마른 언니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 남성 권력과 미디어, 상술의 합작품

바비인형의 몸매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외계인 수준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인형을 가지고 놀며 환상에 빠지고 ‘쭉쭉빵빵’ 미남미녀만 등장하는 미디어의 공세에 세뇌당하다 보니 사회가 모두 착시가 돼버렸다.

TV 드라마에서는 가난하지만 빼어난 외모로 남성 주인공을 사로잡는 여성들이 매일 등장한다.

남성 권력사회에서는 여자의 능력보다는 외모와 몸매가 더 우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배후에는 몸매에 시비를 걸수록 번창하는 산업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는 지방흡입수술을 받기 위해 신용카드를 긁을 수밖에 없는 여성을 손가락질한다. 뚱뚱한 몸매로는 취업조차 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차별 중에서도 가장 심한 차별은 인종차별도, 남녀차별도, 빈부차별도 아닙니다. 바로 용모차별이에요.”

누구 못지 않은 실력을 갖췄지만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한 여성은 이젠 삶의 의욕마저 잃었다.

하지만 여성들이여! 사람은 몸으로 산다. 몸을 학대하면서는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기 어렵다. 몸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

그리고 남성들이여! 남의 살을 안주 삼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유 명 호 사외기자·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