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설마하던 수도 이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한번 가부를 묻자는 게 다수 여론이지만 정부는 국회에서 다수결로 채택한 천도(遷都)이므로 이미 국민적 합의는 끝났다고 반박한다.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통과시킨 당사자는 지난 16대 국회다. 하지만 16대 국회의 결정은 ‘국민적 합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됐던 것이 엊그제까지의 현실이다. 193 대 2라는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대통령탄핵결의안의 운명이 어떠했는가. 탄핵안 가결도 국민적 합의였는가.
16대 국회는 역사상 가장 무능한 국회였다. 이는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의 처리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여당에 우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야당의 행태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의원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신행정수도를 반대하면서도 충청권 표를 의식해 태도를 돌변했다.
당시 어느 한나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경우 수도이전안이 국회에서 채택됐지만 결국 유명무실해졌다. 우리도 특별법을 통과시키되 실행예산을 반영해주지 않으면 흐지부지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계속 다수당이 될 것이란 과신에서 나온 꾀였지만 지금 그 당은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과거를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제라도 국민 총의를 물어야 한다. 신행정수도는 분명하게 실패할 사업이다. 통일 이후를 생각하면 신행정수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정부는 11조원밖에 예산이 안 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총 100조원 이상의 돈이 들 것이다.
우리에게 과연 이런 돈을 투자할 만큼 여유가 있는가. 이웃 중국은 수도 베이징(北京)과 톈진(天津)간에 코리도(회랑·回廊)를 만들어 국제 비즈니스 및 물류센터, 글로벌 제조업 및 정보산업 선도지역으로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인천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동북아 허브 전략’에 결정적인 경쟁상대다. 그런데 한가하게 수도나 옮기고 있어야 하는가.
행정수도를 옮겼다고 대통령의 치적이 빛나는 게 아니다. 다만 선거 공약인 수도 이전을 슬그머니 거두어들일 수는 없을 것이므로 국민투표로 다시 방향을 결정하면 대통령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전 국정원장·동북아경제포럼 한국위원회 위원